민족의 민요 아리랑의 유래
조금 의외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인데
조선 시대 후기만 하더라도 아리랑은 찬밥 신세였다
고종 31년 (1894년)에 저술된 황현의
<매천야록>은 아리랑을 신성염곡 (新聲艶曲)으로 비하했다
그것도 모자라 (대한일보)에서는 기생이나
창부들이 부르는 황음 (荒音)으로 비웃기도 했다
당시 아리랑은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르는 노래였기에 아리랑은
종류가 다양했고 잠깐 유행했다가 사라진 것도 많다
의병아리랑이나 광복군아리랑도 있고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고무신이 미투리를 대신하는 바람에
짚신 장사가 망하는 사회풍조를 닮은 아리랑세상도 있다
이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라는
가사의 아리랑은 본조아리랑 혹은 신조아리랑이라 한다
이는 1926년 나운규의
映畵 <아리랑>에서 사용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오히려 다른 아리랑보다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리랑이 크게 유행된 데에는
나운규의 映畵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며
映畵 <아리랑> 이후 각지의 변사들이 아리랑을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 최신 기계 음반의 도입도 큰 역할을 했다
1930년 처음으로 빅타레코드사에서 김연실이 아리랑을 녹음했고
이후 여러 가수의 다양한 아리랑이 음반으로 만들어 졌다
이런 아리랑의 유행과 빠른 전파 결과 1932년
민요, 잡가 등을 채보하여 (조선속곡집 1914)을 펴낸
작곡가 이상준이 이화여전의 안기영, 아펜젤러,
메리영 등을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아리랑은
조선 민요로서 입지를 굳혔고 마침내 이를 부르지 말라는
총독부의 아리랑을 부지지 말라는 금창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아리랑은 탄압을 받고 사라지는 대신
오히려 거세게 유행했으며 그리고 1950년대 말 마침내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이자 민족의 가요가 되었다
아리랑이 그렇게 오래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이나
처음에는 음란하고 유치한 노래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 부르기 쉬운 노래는 격동하는 한국 근대사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사람들의 고뇌를 담아 냈으며
나라의 운명과 더불어 탄압 받고 감히 부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짧은 노래에 담겨진 역사와 사연들이
참으로 많았기에 지금 아리랑은 한국의 노래가 된 것이다
※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고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틱낫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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