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선묘낭자와 의상대사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선묘낭자와 의상대사님의 애틋한 이루지 못했던 사랑이야기...!"
의상과 선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숲속 어딘 선가 들려오지 않는가.
녹색 단청이 돋보이는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의상이 중국으로 불경을 배우기 위해 여행하던 699년 중국 동주에서 머물렀다.
그동안 먼 길을 여행한터라 의상은 병을 얻었고 치료하는 과정에 선묘라는
여인은 의상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밤낮으로 의상을 정성껏 보살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는가.
선묘의 간호덕분에 의상은 며칠이 지나 말끔하게 병을 털고 일어나게 되었지만
선묘의 가슴앓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했다.
의상은 적산에 있는 법화원으로 옮겨 머물면서 아침마다 탁발(托鉢) 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의상을 흠모(欽慕기쁜 마음으로 공경하며 사모함)하는 선묘였다.
선묘는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의상에게 마음을 전하기로 하고 탁발(托鉢) 을 하고
나오는 의상 앞을 선묘가 나서 길을 막고는 그동안의 속마음을
원효에게 말했다.
의상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분이 승려로서 부처님께
귀의 한 터라 선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불교의 교리를 따라
제자로 삼을 수 있다 고하자 선묘도 의상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던
어느 날 의상이 집을 떠나 가까운 절로 들어가게 되자 선묘는 의상이
떠나기 전날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된다.
선묘의 부탁은 집을 나선 후 의상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신라로 돌아가기 전에 한번 들러 달라는 것이었다.
의상은 선묘의 청을 받아들이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떠나 지엄대사의
제자로 들어간 후 10년간 불경을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의상이 신라로 가는 길목에서 문뜩 선묘의 부탁이 머릿속을 스쳐가자
신라로 가는 배를 타기 전 선묘의 집을 들리기로 하고 서둘러 갔는데
하필이면 선묘가 그날 집에 없었다.
의상은 곧 배가 떠날 것이고 배가 떠나는 시간이 촉박하도록 선묘가
오지 않자 할 수 없이 배를 탔다.
뒤늦게 집으로 온 선묘는 의상이 다녀갔음을 알고는 그동안 의상을
생각하면서 만든 옷을 들고 항구로 달려갔다.
선묘가 도착하였을 때 배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고 선묘는 자신의
마음은 비록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옷이라도 받아 달라면서 바다로 던졌는데
순간 바람이 불어 옷이 바다에 떨어지지 않고 의상의 품에 안겼다.
의상이 떠나자 선묘는 의상을 사모함에 결국 바다에 몸을 던졌는데
용이 되길 바랬다.
신라까지 가는 그 먼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용으로 된 선묘는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였다고 한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이 어느 날 중국에서 온 상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선묘낭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의상이 떠난 후 용이 되어 바닷길을
지켜주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들은 의상은
가슴이 아팠다.
그 후 의상대사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선묘낭자가 도와줍니다.
절을 세우려 했을 때 사찰건립을 반대하던 토호세력들에게 선묘낭자는
큰 돌을 들어 위협함으로써 반대자들을 굴복시킵니다.
그리고 그터에 절을 짓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뜬돌이 있는 절, 부석사[浮石寺] 입니다.
이에 서산에 부석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후대에 사람들이 두분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애틋하게 생각하여
의상대사님이 세웠다는 서산과 영주의 부석사에 선묘각을 만들어
선묘낭자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영주 부석사에 무량수전 오른 편에 부석이 있습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지금도 명주실을 길게 앞뒤로 잡고 부석 밑 둥을
훑어내면 거뜬히 통과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산에도 똑 같은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전설이 서린
사찰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묘의 고향인 산동반도 영성시에서 선묘와 의상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중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선묘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