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외)

[스크랩]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남자

청 송 2016. 12. 11. 20:51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남자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1931년 1월 전형적인 영국의 사냥 여행에서였다.
당시 37세였던 왕위 후계자, 에드워드 8세는국민들에게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참여하는 인물로 인식되어 있었고
왕자로서는 드물게 사회 빈곤층을 방문하고 보살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왕관을 버릴 만큼 사랑한 상대의 그녀는 베시 월리스 심슨…
당시 35세였던 그녀는 첫번째 결혼을 끝내고
선박 중개인이던 어니스트 심슨과 4년째 두번째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단숨에 에드워드 8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지적인 미국 여성 심슨은
이 후 사교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면서이 둘의 관계는 점점 우정을 넘어선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남편은 결국 그녀를 떠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와 여론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태가 급반전된다.
1936년 1월 조지 5세가 사망하자 맏아들이던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여론은 자신들의 왕이 미국 이혼녀의 세번째 남편이 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때는 심슨의 두번째 결혼이 법적으로 끝나지도 않은 상태…
이에 에드워드 국왕은 스탠리 볼드윈 당시 총리에게
“결혼은 하되 신분은 결혼 전 것을 그대로 유지하겠으니 왕위에 계속 남아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볼드윈 총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에드워드왕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심슨 부인과의 사랑을 고백,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려 했다.윈스턴 처칠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라디오 연설 원고에서
"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는
왕으로서의 나에게 끊임없이 부과되는 부담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심슨 부인과 나는 그녀가 여왕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내 아내로서 그녀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직함과 작위를 바랄 뿐"이라고
말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밀 각료회의에서는 왕이 당시 반대 세력이었던 윈스턴 처칠 등
야당력의 지원을 얻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고,
볼드윈 총리는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들어 왕의 라디오 연설을 반대했다.
점점 언론의 압박이 심해지는 가운데 심슨의 이혼이 이루어지자
이제는 어떤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그해 12월 에드워드 8세는라디오에서 퇴위 연설을 한다.
“저는 황태자로서, 그리고 왕으로서
25년간 봉사했던 국가와 제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후원 없이
왕으로서 내가 원하는 대로 어려운 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왕위에서 물러나 그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구축함을 타고 떠난다.그리고 1937년 6월 3일 왕실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로서 그는 에드워드 8세가 아니라 윈저공이 된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비화도 들린다.
심슨이 왕관을 위해 계획적으로 그를 유혹했다고...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영국인들이 그녀를 매춘부라고 욕을 하든 말든
에드워드 8세의 사랑은 진심이었고 숭고했다.세계적으로 떠들썩한 결혼을 한 만큼 주변의 시선도 만만치 않았을 게다.모든 결혼 생활이 그렇듯 어려움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은 둘만의 생활을 지켜 냈고 죽을 때까지 함께였다는 것….
 
“나는 아무것도 후회할 필요가 없소. 또 그렇게 하지도 않소.
나는 당신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한가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요…”

 
 - 윈저공 에드워드 8세 -

 

 

 

//

출처 : 이석화 색소폰 파워 뮤직
글쓴이 : 수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