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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한(恨)과 흥타령 < 남도민요 흥타령 - 소리/조순애, 신유경, 박송희 >♡

청 송 2012. 7. 14. 15:47

 

 

 

 

 

 

 

한(恨)과 흥타령

 

전라도 어느 마을에서 한 여인이 죽었습니다. 동네 장정들이 상여를 메고 마지막으로 동네 앞 당산나무를 빙빙 돌며 노제를 지냅니다. 상여 뒤에는 머리에 쓴 복건마저 무거워 보이는 나이 어린 상주들이 울며 불며 따라다닙니다. 여인의 남편은 넋이 나간데다 울 힘마저 없어 고개를 숙인채 대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어금니만 깨물고 뒤를 따릅니다. 상여소리는 갈수록 구슬프고 보는이나 듣는이의 애간장을 도려냅니다.

 

그 여인네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 어린 나이에 부모가 떼밀다시피하여 남의 집 머슴사는 총각한테 시집와서 엉덩짝만한 땅뙈기를 갈아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다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줄줄이 년년생으로 다섯이나 낳고, 그래도 억척스레 살아보겠다고 이동네 저동네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고 해냈는데, 그만 몸쓸 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집안 내력을 다 아는지라, 그렇게 죽은 여인네가 불쌍하고, 남아있는 자식들이 불쌍하고, 앞으로 살길이 막막한 남편의 뒷 일이 걱정되어 혀만 끌끌 차고 있습니다. 상여꾼들의 구슬픈 소리마저 목이 쉬어 꺼져가고, 마지막으로 동네를 향해 상여가 넙죽넙죽 절을 해댑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제 가면 언제오냐, 언제 또 온단 말이냐. 토끼 같은 새끼들 두고 어디를 간단 말인고. 이 고샅 저 고샅 휘휘 댕기던 길을 또 언제 올 것이며, 당산할매, 당산 하네, 이제가면 영영 가니 이일을 어쩔 것이요. 해남댁, 서산댁 보고 싶어 어쩐다냐..."

 

동네 아녀자들은 울타리 너머로 이 모습을 보면서 울지 않는이가 없습니다. 죽은 사람도 불쌍하고, 산 사람도 불쌍하고, 돌이켜 보니 남의 일 같지 않고 언제 나도 저 꼴을 당할지 모른데다, 지난 날 가슴 깊이 쌓아 온 온갖 설움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상여는 저 멀리 뒷 산으로 사라진지 오래지만, 동네 아녀자들은 삼삼오오 한집으로 모여서 서로서로 가슴에 묻어 둔 설움의 보따리를 풀어가며 통곡을 합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다가 누군가가 코를 풉니다. 다른 여인네들도 줄줄이 코를 풀어댑니다. 팽하고 풀고, 흥하고 풉니다.

 

그리고는 옷고름으로 코 밑을 닦고, 치맛자락으로 콧물 훔친 손을 닦습니다. 울다가 그리하고 또 울다가 그리합니다. 누가 보면 또 초상이라도 난 듯 서럽게 서럽게 울어 댑니다. 울면서 서로 푸념을 합니다. 자기의 신세타령을 합니다. 한 사람이 울면서 자기의 서러운 신세타령을 하고나면, 또 다른 사람이 더 서럽게 울면서 자기의 신세타령을 합니다. 그러다가 콧물이 나오면 '흥'하고 풀어댑니다. 한 사람이 신세타령을 하면 '그것은 내 신세에 비하면 새발의 피여' 하는 식으로 콧방귀를 '흥'하고 뀐 후에 더 서러운 신세타령을 합니다.

 

그렇게 신세타령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죽지 않았어도 동네 아녀자들은 자주 모여 신세타령을 하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가장 슬픈 가사를 따로 모으고, 가장 서럽게 신세타령을 잘 했던 아낙네의 가락을 따라 배웠습니다. 이 가사와 가락이 이동네 저동네로 입소문을 따라 번져갔습니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이게 뭔 노래여?"

"코 풀면서 허니께 흥타령이제..."

그래서 '흥타령'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민족은 한(恨)을 흥(興)으로 승화시키는 민족이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책상에 앉아서 쓴 말 장난일 뿐입니다. 한은 결코 흥으로 전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승화되지도 않습니다. 한은 영원히 가슴속에 한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절한 대금가락이나 아쟁 소리에 맞춰 추는 살풀이 춤을 구경하면 누구나 그 가락과 춤사위에 푹 빠집니다.

 

그러면서 각자 자기 가슴속에 묻어 둔 자기나름의 한의 덩어리를 풀어 헤칩니다. 그렇다고 그 한의 덩어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때 뿐, 곧 시간이 지나면 한은 다시 가슴속의 한의 자리로 되돌가고 맙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면 한의 덩어리가 다시 나타나지요. 이렇듯 한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한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죽을 때 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도민요의 '흥타령'을 듣고 의아해 합니다. 흥타령은 분명히 가락이나 가사가 상여소리에 버금가는 서럽고 슬픈소리인데 왜 하필 흥타령이라고 했을까. 여기서 '흥'은 한자어가 아닌 순수 우리말인 의성어 입니다. 어린 아이 얼굴을 물로 닦아 줄 때, "코를 풀어라"는 말 대신에 어떻게 합니까? 어린 아이 코를 잡고 "흥 해" 하면 아이들이 코를 '흥' 하고 풀지요.

 

흥타령은 결국 눈물 콧물 타령이었습니다. 그래도 조상님들이 눈치가 있어 '콧물타령'이라고 하는 것 보다 좀더 품위 있게 "흥타령'이라고 하였으니 그 안에는 한과 눈물과 콧물이 함께 배어 있는 겁니다.

 

< 출처 - 2007. 9. 15  설촌(雪村)  김용욱 >

 

 

 

'흥타령'은 서민의 신세타령이나 서글픈 심정을 읇고 있으면서도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꽤나 역설적이다.

'어사용'같은 다른 지방에 나타나는 비애의 감정, 노래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다르지 않으나,

이 노래는 제창과 독창의 짜임새가 규칙적으로 되어 있어 여러 사람이 돌림노래로 부르기가 예사이다.

 

< 출처 - 뿌리깊은나무 죠선소리집 12중에서 >

 

흥타령소리/조순애, 신유경, 박송희

대금/서용석

거문고/윤윤석

장구/장덕화



 

 

김수연 명창

 


 

 

 

   

 

 

 

 

출처 : 소담 엔카
글쓴이 : 흰뭉개구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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