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외)

일본군 낙오병의 충성

청 송 2012. 10. 30. 21:10

일본군 낙오병의 충성

오노다 히로오(오른쪽) - 1944년
1922생인 오노다 히로오는 현재 나이가 90살이다
전쟁이 끝난줄 모르고 29년 동안 필리핀의 정글속에서 숨어지내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일본의 마지막 낙오병이었던 오노다 히로오 - 1974년 3월 10일
일본군 퇴역 소위 오노다 히로오는 일본의 패전이후
1974년까지 무려 29년 동안 필리핀 마닐라 근처 작은 섬 루뱅에서
숨어 지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그는 1944년 12월 자신의 말대로 이미 패색이 짙은 전쟁에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며 루뱅섬으로 파견되었다.

250여명의 오합지졸에 불과한 풋내기 부대 지휘관으로 부임하자마자
곧 미군의 공격으로 207명이 죽고 43명이 남았다.
이때부터 전쟁이라기보다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쥐처럼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1945년 10월에 "45년 8월 15일에 전쟁이 끝났으니
일본군은 투항하라"는 전단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를 미군의 속임수로 생각하고 투항을 거절했다.

그해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전단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때 43명중 대부분이 패전 사실을 받아들이고 투항하여
일본으로 돌아갔고
오노다를 비롯한 4명만이 투항을 거절했다.


1946년 4월에는 이미 투항했던 부하들이 섬 전체를 다니며
"오노다, 어디있나? 나와라. 전쟁이 끝났다.
어서 나와라 하루라도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자" 라고

부르며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것도 미군의 흉계로 믿고 거절했다.
이번에는 오노다의 가족이
가족사진과 가족들이 보낸 편지 전단을 뿌리면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다.

오노다는 이것도
가족들이 살기 위해 당국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거부했다.
오노다는 이러한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단독 전투를 계속하여 루뱅 섬 원주민들 30명을 살해했다.

1950년 이후 해마다 각계 각층에서 찾아가 "일본으로 돌아갑시다.
내 목소리가 들립니까?"라고 부르면서 찾았다.
심지어 필리핀 주재 일본 대사관 이름으로 편지함을 설치하여
고국에서 온 편지들과 신문 등을 넣어두어 보게 했지만
함정으로 알고 접근마저 거부했다.


1965년에는 마을 원주민으로부터 라디오를 약탈하여
직접 패전을 비롯한 모든 뉴스를 들었음에도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가족들과 고등학교 동창생들까지 동원되어
오노다 구출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학교 교가를 울먹이면서 부르며
"오노다, 일본에서 형님, 누나가 오셨습니다.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주십시오"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나는 일본 천왕의 명령이 없이는

투항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후 16개월 동안 종적을 감춘 뒤 어처구니없게도
옛 상관이 전해준 '패전했으니 귀국하라'는 특별명령서를 받고서야
투항했다.

그가 29년 동안
루뱅 섬 원주민을 학살한 것이나 피해를 준 것에 따르게 되면
당연히 전범처리하여 교수형이나 총살형에 처해져야 함에도
마르코스 정부는 오노다에게
아무런 죄도 묻지 않고 사면석방하였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애국심이 없이는

자신의 30년 청춘 인생을

그토록 패잔병의 미치광이 같은 생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가를 위한 충성의 본보기가 되었다.

진정한 군인 정신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삼근 제공

"그의 마음이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여러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느헤미아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