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23 13:46 | 수정 : 2012.11.23 14:09
캐나다 제2보병대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Battle Group) 고(故) 로이 더글러스 엘리엇(R. D. Elliott) 상병은 이역만리(異域萬里) 한국 땅에서 1953년 4월 17일, 약관(弱冠)의 나이에 숨졌다. 휴전(休戰)을 석 달 앞둔 시점이었다.
캐나다 제2보병대대는 영국 미들섹스 대대, 호주 왕실 제3대대, 뉴질랜드 제16포병연대와 함께 1951년 4월 서울-춘천 간 주(主) 보급로였던 가평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6·25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부대다.
캐나다에 있는 엘리엇 상병 가족들은 엘리엇 상병의 전사(戰死)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빠듯했던 가정형편 탓에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엘리엇 상병의 동생 도널드 엘리엇(Donald Elliott·74)씨는 형을 가슴에 묻었다.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의 이름과 함께.
그렇게 60여년이 흘렀다. 동생 엘리엇씨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미시소거(Mississauga)에 사는 엘리엇씨는 지난 12일 현대자동차 매장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다. 차를 사러 들른 매장에서 그때 그 ‘낯선 나라’ 출신 차량판매원을 만난 것이다. 형이 피 흘리며 ‘자유’를 지켜준 나라에서 온 청년에게서 엘리엇씨는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다.
그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엘리엇씨가 말했다. “큰형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큰형 무덤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 한국에 무덤이 있다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청년은 형의 이름을 물었다. “Roy Duglas Elliott.”
청년은 그를 돕고 싶었다. 그가 ‘고객’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랬다. 청년은 무작정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름 하나만으로 엘리엇씨 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엘리엇씨가 차를 찾으러 오겠다고 한 15일 오전까지도 진전이 없었다.
캐나다 제2보병대대는 영국 미들섹스 대대, 호주 왕실 제3대대, 뉴질랜드 제16포병연대와 함께 1951년 4월 서울-춘천 간 주(主) 보급로였던 가평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6·25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부대다.
캐나다에 있는 엘리엇 상병 가족들은 엘리엇 상병의 전사(戰死)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빠듯했던 가정형편 탓에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엘리엇 상병의 동생 도널드 엘리엇(Donald Elliott·74)씨는 형을 가슴에 묻었다.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의 이름과 함께.
그렇게 60여년이 흘렀다. 동생 엘리엇씨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미시소거(Mississauga)에 사는 엘리엇씨는 지난 12일 현대자동차 매장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다. 차를 사러 들른 매장에서 그때 그 ‘낯선 나라’ 출신 차량판매원을 만난 것이다. 형이 피 흘리며 ‘자유’를 지켜준 나라에서 온 청년에게서 엘리엇씨는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다.
그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엘리엇씨가 말했다. “큰형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큰형 무덤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 한국에 무덤이 있다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청년은 형의 이름을 물었다. “Roy Duglas Elliott.”
청년은 그를 돕고 싶었다. 그가 ‘고객’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랬다. 청년은 무작정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름 하나만으로 엘리엇씨 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엘리엇씨가 차를 찾으러 오겠다고 한 15일 오전까지도 진전이 없었다.
- 신상묵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고(故) 로이 더글라스 엘리엇 상병의 묘비 사진.
미시소거현대차에서 근무하는 신상묵(30)씨는 자신이 겪은 이 일을 15일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신씨의 사연은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영화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네티즌들의 찬사가 쏟아지자 신씨는 “이런…. 칭찬받을라고 올린 게 아니고 도와줄 수 있어서 감사해서 올린 글인데. (분에) 넘치는 답글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한편 6·25전쟁 당시 캐나다군은 모두 2만6791명이 참전해 516명이 전사하고 30여명이 실종됐으며 1200여명이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