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슬라이드

칸차나부리콰이강의 다리

청 송 2013. 5. 26. 08:37
 

★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

Bridge on the River Kwai

태국의 방콕으로부터 서북쪽으로 115km에 칸차나부리 라는 도시가 있고 이곳을

흐르는 콰이강 위에건설된 다리가 "콰이강의 다리" 이다.

이 다리가 유명세를 타고 꾸준히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57년작 영화 "Bridge on the River Kwai(콰이강의 다리)"의

역활이 컸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영화의 내용은 잘 알면서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일본군 군속으로 이 다리 건설에 참여했던

조선인 중 52명이 일본인으로서 전후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되거나 후에

사면되었으나 불행한 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 가는 길-

** 콰이강은 비교적 수심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고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강력한

스피드 보트가 아니면 운행이 어렵다.

-스피드 보트로 콰이강을 역류하는 관광객들-

- 리버 콰이 리조텔(River Kwai resotel) 선착장-

**방콕에서 콰이강의 다리까지의 중간 지점에 하룻밤 묵어 갈 수있는 리조텔이

있는데 육로로도 들어갈 수 있으나

스피드 보트로 깊은 계곡물을 역류하여 들어가는것이 더 운치가 있다.

- 리조텔 안내판-

** 계곡 맞은편 언덕위(표고 약 100m)에 조성된 대 단지의 리조텔은 외모로는

현대식 물건이 전혀 보이지 않는완전 토속식의 리조트이다.

-클럽 하우스 내의 식당과 안내 데스크-

- 클럽 하우스 테라스-

-숲속에 지어진 방갈로우 들-

- 2층 짜리방갈로우-

**필자가 묵었던 연못 옆에있는 첫번째 2층짜리 숙소(안내판)는

단지내에 4채가 있다.

-숙소 내부-

** 샤워 시설이있다.

-단지 중앙 연못위에 있는 컨벤션 센터(?)-

-방갈로우 주변의 열대 식물들-

-도로가에 마련된 살아있는 신(?) 푸미 폰 국왕의 어진(?)을 모신 제단-

-콰이강의 다리 옆의 상점들-

** 이곳을 찾는 많은 서양인들 중에 상당수가 러시아 인들이라고 했다.

-콰이강과 철교-

-콰이강의 다리와 철도를 설명하는 모형 동판-

** 위의 모형은 이곳보다 조금 상류에 있는 원래 콰이강의 다리에 있는것을

설명을 위해 앞으로 내 놓은 것이다.

사판(모형) 오른 쪽 아래에 보이는 1번 위치에 Original "콰이강의 다리"가 있다.

이곳이 칸차나부리로 일본군의 본부와

베이스 캠프가 있었고 주변에 희생자들의 묘지가 있다. 다음 사진의 목조 철교는

오리지날 철교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하지만

영화의 장면과 가장 비슷한 모양의 목조 철교라서 이곳을 찾는 것이다.

콰이강은 두개의 지류가 평행으로 흐르다가 칸차나부리에서 합류한다.

북쪽 콰이강은 콰이 야이(Kwai Yai)라고 부르고

남쪽 콰이강은 콰이 노이(Kwai Noi)라고 부른다. 콰이강의 다리는 콰이 야이

위에 건설되어있다.

-영화의 장면과 가장 비슷하다는 목조 철교-

-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등장하는 목조다리-

-영화의 한 장면을 화상하며 걸어볼 수 있는 목조 철교-

** 이 철교 주변에는 어떤 안내판이나 설명도 없다. 다만 상술이 이곳으로

관광객을 유인하는 것이아닌가 생각된다.

"콰이강의 다리"가 촬영된 곳은 스리랑카의 암베푸사(Ambepussa)라는 곳을 포함하여

다섯 곳에서 촬영되었다.

- 목조 교각-

**암벽을 깎아내리며 난공사를 했던 곳이라 길은 없지만 필자는

굳이 교각까지 내려가 보았다.

-철교 옆 동굴 사원-

** 철교옆에는 깊지는 않으나 커다란 동굴이 있고 여기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 상류쪽으로 이동하는 바지선-

-콰이강의 다리 오른편의 수상 위락시설들-

-태극기 휘날리며,,,,,,,-

-동쪽(건너 쪽)에서 본 다리-

**연합군 포로들이 건설했던 다리는 영화에서 처럼 특공대원 윌리암 홀덴에

의해 폭파되는것이 아니구

미군의 폭격기에 의해 폭파된다. 이 철교는 후에 미군에 의해 재건된것이다.

-전범자 일본이 사용하던 다리 옆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 전시된 두대의 기관차 중 한대의 앞에는 "구형 C5 기관차 보존회" 라는

일본인 단체가 1977년 2월 7일 기증한다는 일본말 표지가 붙어있다.

-팽창주의 중국사람들의 흔적-

**철교 끝 왼쪽에는 화군비(華窘碑)라는 중국군대의 참전을 기념하는 비가 있다.

자그마한 오벨리스크 형태의 비석에는 "외로운 군인 영원히 잠들다(孤軍永睡)

라는 비문과

"중국 원정군의 전공이 하늘처럼 높다(中國遠征軍功高如天)라고 쓰여있다.

옆의 현수막에는 "중국원정군 전사자 영면" 이라는 글도 보인다. 2차대전 시

태국전선에 중국군이 참전했다는것도 금시초문...

-철도공사에 한국인이 참여한 증거-

** 앞서 소개한 사판 오른편 상단에는 일본과 한국인 10.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되어있고 이중 상당한 한국인이 전후

전범자로 처형되거나 비참한 생을 마쳤지만 잊혀진 역사로 누구하나 관심도없다.

명품이 거기있었다면 당장 소문이 났겠지만....

중국, 일본 사람들과 한국인의 차이인가?

이 동판 옆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새긴 또 하나의 동판이 설치되어있다.

ㅇ. 2차대전 중 약 700명의 미군포로는 태국과 버마로 이송되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고 태국--버마간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이들 중 질병, 영양실조, 과로, 그리고 육체적인 혹사로 사망한 356명의 장병을

특별히 기리고자한다.

-제5지구(태국) 해외 참전 미국 재향군인회-

-연합군 전몰 장병 묘지-

** 이 묘지에는 영국, 네델란드, 호주, 미국 등 6,982명이 묻혀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약자에겐 평화를 누릴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River Kwai March
(March From The River Kwai And Colonel Bogey)

Performed By
Mitch Miller & His Orchestra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미얀마국경 근처의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의 양아버지가 되는 아리우스 장군 역을 맡았던

잭 호킨스는 다리를 폭파하러 오는 영국군 유격대의 워든 소령 역으로 나옵니다.

그리고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다시 다리를 폭파하러 돌아가는 미군인 쉬어즈 소령

역에 윌리엄 홀든이 있었죠.

영화가 시작되면 한떼의 거지군상들이 경쾌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몰려온다.

바로 이 음악과 장면이 엔딩의 비극적인 장면과 함께 이 영화 최고의 장면으로

꼽히는 "Colonel Bogey March"다.




2차대전이 한창인때 일본군은태국과 미얀마를연결하는장거리

수송 철도 건설을 계획한다. 그리고 이 공사의 가장 큰 난관이던

콰이강 계곡 다리 건설에 노동자로영국군 포로들을 투입하려 한다.

포로수용소장이었던 일본군 사이토 대좌는 자결까지 각오하고

공사를 지휘한다. 사이토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공사에 장교들까지

투입하려 하지만 영국군 포로 지휘관인니콜슨 대령은 제네바 협정을

거론하며 장교들을 노동에 투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맞선다.

한편 니콜슨과 사이토 간의 신경전 속에미군인 쉬어즈는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하게 되고사이토는자신의 뜻을 꺾고

다리 공사의 지휘권을 니콜슨에게 넘겨 주게 된다.

그리고 니콜슨은 철저한 군인정신으로포로들을 이끌며

오히려 일본군의 강제적인 지휘때 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엔포로들 안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같은 포로이던 영국군 의사는 니콜슨에게 일본군의 다리 건설을 돕는

행위는 반역이며 어쩔 수 없이 공사에 협력한다 하더라도 굳이 일본군 보다

열심히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니콜슨은 그 말을 무시한다.

그리고 그 의사에게 반문한다. "당신은 의사로써 적군 부상자를

수술해야만 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 하지 않을 것인가?"



콰이강에서 니콜슨이 다리 건설에 열심일 무렵인도의 영국군은

일본군의 전진을 막기 위해콰이강의 다리를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곧 워든 소령을지휘관으로 한 유격대가 편성되었고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쉬어즈가 작전에 동참하게 되면서 작전을 위해 쉬어즈는

어렵게 탈출한 수용소로 돌아간다.



드디어 다리는 무사히 완공되고 영국군 포로들이 자축의 밤을

보내는 가운데 굴욕감을 느낀 사이토는자결을 결심한다.



개통식 전날 영국군 유격대는다리에폭약을 설치하지만
다음 날 아침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일본군 VIP를 태우고 온다는기차를 기다리던

니콜슨에게 발견된다. 니콜슨은 다리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다며

사이토와 함께폭약이 설치된 도선을 따라가게 되고 영국군

유격대는 숨어서 그 장면을 보다가 아군인 니콜슨이 폭파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장면에 경악한다.



멀리서 일본군 VIP들이 타고 있는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니콜슨은쉬어즈가폭파를 멈추려는

자신을 저지하려다 총을 맞는 것을 보고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리고 마치 꿈에서 깨듯 정신을 차렸을 무렵 그는 총을 맞고 휘청이는

몸으로폭파 스위치를 누르며 죽는다.

다리는 폭파되고 달려오던 일본군의 기차는강속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던 영국군 의사가 내뱉는 혼잣말과 함께

영화가 끝이 난다. "미쳤군, 미쳤어.."



"콰이강의 다리는 점령국 일본과 패전국 영국이 서로의 자존심을

대결하는 상징적 구축물인데 이것이 파괴됨으로써제국주의도 함께

붕괴되는 것을 영화 속에서 암시해준다."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모든 것을 따로 떼어서 보게되면

나쁜 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별로 없게 된다.

그러나 그 객관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의도와 배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원래 보이는것 밖에 보지못하는 바보이거나

봤으면서도 다른 말을 하는 거짓말장이거나 알면서도

행동하지않는 비겁자에 다름아닐 거다.



내가 뭘한거지?


객관적으로 니콜슨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는 군인으로서
그가 받은 임무에 충실했고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러나 니콜슨의 노력과 신념은 위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위대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다리는 다리일뿐이었지만

그것이 다리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다리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한복판에서야

비로소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죽음으로 바로잡는다.



우리도 니콜슨처럼 눈 앞의 것에만 골몰해서 전체를 보지못하는

함정에 빠질때가 있다. 때로는 바보나 거짓말장이나 비겁자들이

그것을 변명하기도 한다. 다리는그냥 다리일 뿐이라고.

나는 그냥 내 일을 할뿐이라고. 그러면서 구차한 변명을

객관과 가치중립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러나 콰이강의

다리는 다리일뿐이었지만 그냥 다리가 아니었다.

그 다리로 인해 전쟁이 계속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되는 결코 성공해서는 안될 다리였다.



내 임무을 완수하기 위해 열심히 하고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대체로 미덕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에게

이익이며 그 결과가 어떨 것인가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지 않는다면알고 그러든 모르고 그러든간에 그 자체로

죄악이며 사회의 적이다. 그리고 오늘날처럼일제에 부역하고

독재에 협력한 과거를그저 개인의꿈을 이루기 위해

그때 자신에게 주어진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는 같잖은

변명이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1.멜러영화들을 주로 연출한 데이비드 린 감독은

웅장한 서사시 형태의 대작 영화로 연출 방향을 바꾼 첫 작품인

이 영화로 아카데미에서 첫 감독상을 받았으며이제는 레젼드가 된

명배우들의 연기와 시대를 앞선 반전 메시지,

그리고 촬영과 음악까지 모두 찬사를 받았다.

2.영화의 배경인 콰이강의 다리는 실제로 있는 다리로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415km의 철로 선상에 있으며 전쟁포로와

강제노역자들에 의해 일본군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때총 8만명의 노동자와 1만3천여명의 전쟁포로,

그리고 수천명의 일본군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