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천재·기인(天才·奇人) ◈ ◆ 아홉번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한국의 천재 이율곡 한국의 역사상 현인의 경지에 근접한 인물을 꼽으라면 율곡 이이 선생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장원급제 한 인물이다. 우리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 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 사상가이며, 교육학자였고, 철학자였다.
또 유명한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뿌리깊은 천재가문의 집안이었으며 성리학의 대가, 등 그러나 천재는 단명이라고 했던가 그는 타고난건강이 좋지 않아 ◆ 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보통 4-5개의 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도 천재라고 극찬을 한다. 그런데 한사람이 7개국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주인공이다.
학자적으로만 평가한다면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명문가답게, 일제하 독립투쟁의 주역들인 단재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이 ◆ 조선왕조 실록에 3000번이상 등장하는 송시열 송시열 그는 선조임금부터 숙종 임금때까지의 문신 학자이다. 그의 전성기는 효종때이며 효종임금의 오른팔이 되어 정계의 일인자가 되었다.
정계의 명망 때문에 교우관계가 넓었고 방대한 저술도 남겼다. 이점이 당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성리학으로 철저히 무장된 학자였으며 흙탕물같은 정치판에는 끼어들지 말아야했다. 서울로 압송되어오던중 정읍에서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오는 또 전국 42개 서원에 배향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역사적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 왕의 얼굴 한번 보지도 않고 정승에 오른 윤증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다.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 당쟁의 한 축이었으며 재야의 막후실력자 소론의 영수였다. 우리나라 역사상 단한명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는데 그가 받았던 관직을 보면 36세 때 내시교관부터 공조정랑, 사헌부 지평, 판돈녕부사까지 모두 사양하였다.
일정한 세력을 등에 업고 한번도 조정에 나가지 않고 왕의 얼굴도 보지 않으며 정승이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 천재 가문에 또하나의 천재(이율곡의 아우) 이우 "왕대밭에 왕대난다" 조선왕조 천재가문인 이율곡, 신사임당 가문이 배출한 또 하나의 천재 가 있다.. 그는 조선조 통털어 시,서,화,금[詩,書,畵,琴]에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여 천불여이물[天不與二物]이라 하여 하늘은 인간에게 두 가지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있다. 머리가 뛰어나면 행동이 부족하고, 이렇듯 여러 재능을 겸비하기란 천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면 닭이 벌레인줄알고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다.
십절이 탄생되어 . 신사임당 家의 천재적 재능은 오늘날에도 살아숨쉬며 역사속의 거울이 되고 있다.. ◆ 과거급제 60년만에 판서가 된 윤경 인간은 불평등 한 것일까? 앞장의 정태화 같은 인물은 판서란 직책은 모두거치며 누구는 급제 60년만에 겨우 판서에 올랐으니 말이다. 관료들의 경노당 최고령 기록을 갖고 있는 윤경은 30세에 급제하여 불가사의하고 유일무이한
버텨낸 그의 집념과 불굴의 의지는 인간승리의 전형을 보여 준 예라 하겠다. 마음이 너그럽고 욕심이 없는 것이 장수의 비결일까? 윤경은 98세까지 살다 간 장수인물이며 ◆ 83세에 과거급제한 인간승리 박문규 조선왕조 최고령 과거 급제자 박문규. 83세의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당당하게 최고령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한 역사에 남기고 떠난
어디까지일까? 자기도전에 성공하여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답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는 문신중심의 사회이고 문관에게 부의 축적은 물론 부인의 축첩 등 수많은 특전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가문의 흥망성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83세의 박문규는 과거시험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아마도 수 십 번은 보았을 것이다.
병조참의를 제수 받았으나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76세에 처음 장가 들고 99세까지 장수한 홍유손 조선시대 하면 사내아이는 보통 10세를 넘으면 장가를 가게 되는데, 아이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소위 죽림칠현으로 속세를 떠난 청담파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99세까지 살다간 조선시대 기인중의 한명이다.
그를 평해 [글은 칠원같고 시는 산곡을 누빈다.] 고 하였다. 특히 세조가 정권을 잡은 후 99세의 천수를 누린 그는 역사 인물사전에 나오는 최장수 인물이 되고 있다. ◆ 섹스심벌 어우동은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다 조선조 최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 어우동,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우동은 성종 때의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의 딸로 태어났으며 이름도 책마다 다른데, [용재총화]에는 어우동, [실록]에는 어을우동, 이라고 되어있다.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다. 특히 근친 상간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에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기를 강요하였다.
관리들이 많았으며 의금부의 문초 끝에 삶의 여정을 끝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 조선왕조 최연소 급제자[만14세] 이건창 조선시대 20세 미만 급제자는 30명이며 그중 최연소 급제자는 6명중 5등으로 뽑힌 이건창은 판서 이시원의 손자로 강화출생이며 5세에 문장을 구사할 만큼 조정에서도 너무 일찍 급제하였다 하여 4년뒤인 만18세가 되어서야 홍문관직의 벼슬을 주었다.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으로 낱낱이 들쳐 내다가 하기도 하였다.
전개과정을 기술한 대문장가로 손색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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