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관련 사진,동영상

한국땅 다시 밟은 6·25참전 美 쌍둥이

청 송 2012. 6. 27. 08:07

 

한국땅 다시 밟은 6·25참전 美 쌍둥이

입력 : 2012.06.27 03:16

미국·比 참전용사 방문 행사, 1949년 징집… 공수부대 자원
"폐허 됐던 서울 발전 놀랍다"

쌍둥이 형제는 미국 시카고에서 1931년 12월 17일 10여분 차이로 태어났다. 초·중·고교를 같이 나왔고 결혼 후에도 90m 떨어져 살 정도로 늘 붙어 다녔다. 지팡이도 돋보기도 같은 회사 제품을 쓰고 있다. 형제는 60년 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함께 참전했고, 같은 부대에서 싸웠다. 안토니·토마스 베조스카(Bezouska) 형제 얘기다.

베조스카 형제는 6·25전쟁 62주년을 맞아 세에덴교회(경기도 용인)의 '미국·필리핀 참전용사 방문' 행사로 최근 한국을 찾았다. 형제의 방문은 1999년에 이어 13년 만이다.

방한한 안토니(왼쪽)와 토마스 베조스카씨.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둘은 26일 오전 서울 용산 미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에게 "60년 전 우리가 지켰던 곳을 여러분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라고 했다. 오후엔 북의 공격으로 두 동강 난 천안함이 전시된 평택 제2함대를 방문해 46용사를 위해 묵념했다. 전날인 25일엔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 기념식에 참석한 뒤 남산 서울타워에 올랐다. 형제는 "13년 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고 감탄했다.

형제는 고교 졸업 후 1949년 군에 징집됐다. 이들은 공수부대에 자원했다. 안토니씨는 "당시 군에서 공수부대는 해외에 파병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했다. 형제의 예상은 빗나갔다. 둘은 미 육군 제187공수연대전투단 소속 전투병으로 1952년 3월과 4월 각각 한국 땅을 밟았다.

미군은 2차대전 때 5형제가 같은 함정에서 근무하다 일본군 어뢰 공격에 모두 전사한 직후 형제가 동일 부대에서 복무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쌍둥이는 예외였다고 한다. 베조스카 형제는 "서로 지켜줄 수 있도록 같은 소대에서 싸우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187공수연대는 1950년 10월 20일 숙천·산천과 1951년 3월 23일 문산리 등에서 두 번의 전투공수(空輸) 작전을 펼쳤다. 베조스카 형제가 참전했을 때는 187공수연대가 38선 부근에서 치열한 지상전을 벌일 때였다.

베조스카 형제는 참전 4개월 뒤 함께 일본으로 가 3주간 의무(醫務) 교육을 받고 위생병으로 부대에 복귀했다. 형제는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위생병"을 외치는 전우들을 향해 뛰었다. 토마스씨는 "우리 형제는 격렬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큰 부상을 입지 않아 정말 운이 좋았다"면서도 "동고동락한 전우들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다는 점에서 가장 운이 나쁘기도 했다"고 했다. 형제의 소대에서만 22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베조스카 형제는 1953년 12월 귀향해 1954년 3월 제대했다. 이후 46년 만인 1999년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냄새 나고 더럽고 폐허였던 서울이 그렇게 발전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게 그들의 소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