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は涙か溜息か-藤山一郎
作詞 高橋掬太郎 作曲 古賀政男
一
酒は涙か溜息か
心のうさの捨てどころ
二
遠いえにしのかの人に
夜毎の夢の切なさよ
間奏
三
酒は涙か溜息か
かなしい恋の捨てどころ
四
忘れた筈のかの人に
のこる心をなんとしょう
歌の背景
이 노래는 1931年(昭和6年)에 発表되었습니다. 当時 北海Times의 記者였던 高橋掬太郎가 作詞하고, 新進 作曲家로서 注目을 받고 있던 古賀政男가 曲을 붙였습니다. 노래는 아직도 東京音楽学校(東京芸大音楽学部의 前身)의 学生이었던 藤山一郎가 불렀습니다.
高橋掬太郎로부터 歌詞를 받은 古賀政男는 짧은 歌詞에 놀라, 果然 歌謠曲이 될까 걱정했다고 합니다만, 後에 大 作曲家의 솜씨를, 훌륭하게 發揮하여 日本 歌謡史에 남는 名曲으로 完成했습니다.
이 노래가 大히트 한 것은, 노래하기 쉬운 멜로디에, 俗謠와 같은 七五調의 短詩型이 日本的인 心情에 어필했기 때문에지요.
最近의 젊은 사람用의 노래는, 全般에 걸쳐 歌詞가 길어지고 있습니다만, 많은 말을 使用하고 心情을 傳하는 것은 比較的 簡單합니다. 이 노래와 같이, 1聯이 30音 未滿으로 닿지 않는 사랑의 괴로움을 表現하는 것은, 좀 처럼 才能만으로는 完成되는 것이 아니지요
2番과 3番의 사이에 25 小節의 긴 間奏가 있기 때문에, 노래할 때는 注意해야 합니다
J•pop이 繁盛한 오늘날, 大學生이 팝을 노래했다고, 停學 處分이 되는 等의 일은, 現代에서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昭和의 初期, 生家의 빛을 갚으려고, 아르바이트로 流行歌를 노래하였는데 그것이 크게 히트하여, 그것이 原因이 되어 學校에서 停學 處分을 받은 事件이 있었습니다. 藤山一郎의 音楽学校 停学事件입니다. 当時에는 이것이 큰 話題였습니다.
「官立の音楽学校の生徒が流行歌を歌っている」故鄕에서는 이런 所聞이 떠 돌고 있었습니다. 1931年 가을, 満州事変이 本格的으로 불거져 나올 무렵. 《酒は涙か溜息か》의 레코드가 너무 많이 팔려, 藤山一郎 라는 歌手의 이름이 話題가 되었습니다. 藤山一郎(本名 増永丈夫), 当時 東京音楽学校 声楽科 学生으로 将来 바리톤 歌手로 嘱望되는 学生이었습니다. 昭和의 恐慌으로 기운 家勢를 도우려고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豊富한 聲量을 強弱 法에 影響을 주어 마이크로폰에 效果的인 錄音을 했습니다. 声楽 技術을 正統으로 解釈한 Croon 唱法에 따라 古賀政男의 感傷에 흘러 넘치는 Guitar의 魅力을 表現했던 것입니다.
東京音楽学校는「上野」라고 불려지는 唯一한 官立의 音楽学校입니다 classic 音樂의 殿堂이며 權威가 있었습니다. 音楽学校의 校則도 厳하여 學生이 校外에서 演奏하는 것을 禁止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流行歌의 레코드 吹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들키지 않게 藤山一郎라는 芸名으로 노래했던 것인데. 레코드가 너무 많이 팔려 學校 當局이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増永 青年은 学校의 主事室에서 꾸지람을 받습니다. 說敎를 입다물고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激烈한 말에 참지 못하고 反論해 버렸습니다. 선생님들의 学校 外의 実業은 認定하고, 學生의 実業을 禁止하는 것. 이것은 偏頗的이 아닌가 라고 하는 것이 増永의 反論이었습니다.
이것 안 되겠다. 完全히, 心證을 해쳐 버려, 하마터면 退學이라는 곳까지 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學校가 期待했던 별을 그렇게 簡單하게 退學 處分을 할 수 없다 라고 앞장서 退校 處分에 맨 먼저에 反對한 것이 聲樂科의 敎授陣이었습니다. Klaus Pringsheim 敎授는「Lohengrin의 baritone이 使用할 수 없게 된다」라고 强硬하게 反對. 일의 重大함이 유럽 外遊中인 乗杉嘉壽 校長에게 緊急히 傳해져, 急遽 帰国했습니다.
乗杉는 増永의 才能을 높이 評価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増永青年은「上野が始まって以来の最大の歌手になると」이라고 期待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結局, 1個月의 停学으로 一旦落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停學 期間이 겨울 放學이라고 하는 洗鍊된 措置였습니다. 하지만, 藤山一郎의 歌声은 増永丈夫를 버리고 하늘을 돌듯이 全國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将来를 芸術家로서 嘱望되던 分明한 人生이, 클래식과 流行歌의 갈림길에서 国民的인 大衆音楽家로서 人気를 얻는 稀有한 人生이 始作되었던 것입니다. 설마, 東京芸術大学 卒業 時 国民栄誉賞이 나오리라고는 予想도 못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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