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 사랑은 보류하겠소
- 허해송 -
자고 깨나면 피어나는 심연의 동혈을 아십니까
그곳에 허우적이는 아픔을 아십니까
먹장구름이 몰려오지요 비가 긋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바닥을 헤집는 홀로 된 해파리의 막막함으로
그대 나의 사랑이래도 건널 수는 없지요
우주공간을 가시려오?
걸어도 걸어도 떠나올 수 없는 유년의 쓸쓸함 속,
거울을 들추어 나를 봅니다 남는 건 없고 가슴엔
말라서 비틀어진 젖꼭지 하나 대올거리며
매달려 있소
내 어미의 젖꼭지 같기도 하오 내 누이의 젖꼭지 같기도 하오
어쩜 얼굴도 모르는 할미의 젖꼭지인지도 모르겠소
학교 울타리 철조망에 총총 꿰어 널은 호박 꼬지는 아닐까
나, 그만 떠나려 하오 그대 사랑은 보류하겠소
파란 유리가 달린 시골 우체국의
창틀 너머 일렁이는 수숫대 바람 꼬리에다
그리움을 달겠소
우푯값이 모자란대도 그대여, 걱정은 마오
흰 구름이 흘러내리는 집 뒤의 언덕바지에 고춧대를 걷어내고
오이 모종이라도 하리다
노란 꽃이 작게 패면 회신을 기다리고 열매가 패면
가슴 설레어 잠을 자지요 여름밤이 깊어 올라 반딧불이 날고 들면
모깃불에 삭정이라도 태우며 묵은 쑥을 던져넣겠소
의안을 끼고 허울이라 말하는 그대여
굴뚝 아래 피어난 버섯이여
꿈결에 울고 나는 심연을 아십니까?
철철이 산 가슴에 모기장을 치고
깨어나면 허우적이는 슬픔을 아십니까
여름 한낮을 내리쬐는 따가움에 방아쇠 여섯 발을 당긴
그 사연을 아십니까
그대여
저기,
동구 밖 느티나무 곁으로 반가운 손님이 오는가 보오
『 내 어린 날의 신부 中에서 』

출처 : 엔카 컴나라
글쓴이 : beeb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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