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외)

[태국 대홍수] 대홍수… "방콕 사수 포기"

청 송 2011. 10. 22. 10:26

 

[태국 대홍수] 대홍수… "방콕 사수 포기"

[김재곤 특파원 태국 현지 르포] 50년만의 홍수, 南下 중
방콕쪽 수문 막았던 정부 "못 버틴다" 결국 물길 열어 시민들에 "대피 준비" 지시
"침수 피하자" 차량들 高架道 점령 … 생필품 사재기도
물·라면·휴지 진열대 텅 비고 방콕 흐르는 운하 水位 높아져… 관광업 교민들 타격 불가피, 한국기업들은 안전한 곳 위치

"홍수가 날 것에 대비해 사람들이 물이나 라면을 마구 사들이고 있어 물건이 들어오자마자 팔려나가요."

21일 오후 1시쯤(현지시각) 태국의 수도 방콕 중심가 라차다 지역의 대형마트인 로터스의 매장 직원 놈판(29)씨는 이렇게 말했다. 생필품 진열대는 텅 비어 물·라면·통조림·식용유가 하나도 없었다.

방콕은 햇볕이 쨍쨍 나는 맑은 날씨인데 사람들은 홍수 공포에 사로잡혀 도시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다. 5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홍수로 태국 전 국토의 70%가 피해를 입은 데 이어 방콕도 언제 잠길지 모르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태국이 7월 말부터 시작된 폭우로 지금까지 국토의 70%가 피해를 입었고 34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홍수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 기반이 타격을 받고 있다. 사진은 20일 태국 최대의 산업단지인 북부 파툼타니에 있는 산업단지가 물에 잠기고 고속도로 일부만 솟아 있는 모습이다. 태국 자체의 피해복구 비용 추산치가 한화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하향조정됐다. 현지에 진출한 일본 자동차업계가 생산을 전면 중단하는 등 동남아 최대 생산거점으로서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AP 뉴시스
방콕 중심가 실롬 지역에 거주하는 수 캐사린(31)씨는 "아기가 있어 일단 친정으로 대피했다"며 "남편은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같은 지역에 사는 수난타 씨락(30)씨는 "생필품도 미리 사다 놓고 차는 5층에 주차해 놓은 채 택시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콕 일부 지역에선 6차선 도로의 4개 차선이 주차장이 돼버렸다.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서 운전자들이 고가도로 위에 차를 주차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방콕 동남부에 위치한 수완나품 국제공항은 공항 주변 도로에 차량을 주차시켜도 좋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태국 홍수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위성사진. 북부와 중부에 짙은 푸른색으로 표시된 곳이 침수지역이다. 작은 그림은 정부가 수도 방콕을 보호하기 위해 넘치는 물을 인공운하(크롱운하 1·2·3)로 끌어들여 방콕 차오프라야강 등을 통해 타이만(灣)으로 빼내는 작업을 도식화한 것이다.
인근 아유타야와 파툼타니의 경우 주택 1층이 완전히 잠긴 지역의 주민들이 철판으로 만든 보트에 모터만 장착해 생필품 등을 구하러 다른 지역으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니·혼다를 비롯해 5개 공단에 600여개의 일본 기업이 입주해 있는 아유타야는 완전히 물바다가 됐다.

태국 중·북부에서는 지난 7월 말부터 석 달가량 계속된 홍수로 피해가 극심했다. 하지만 그동안 태국 정부는 주변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도 방콕의 침수를 막기 위해 북쪽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제방과 수문 폐쇄 등을 통해 외곽 지역으로 돌렸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20일 이 같은 방식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태국이 50년 만에 최악의 홍수피해를 겪는 가운데 수도 방콕 북쪽에 있는 파툼 타니주(州)에서 시민들이 21일 홍수로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지나가고 있다. 일부 시민은 트럭에 매달리거나 보트를 탔다. 홍수로 불어난 강물이 중·북부지역을 휩쓸고 남하하자 태국 정부는 물길을 분산하기 위해 방콕으로 향하는 강의 수문을 20일부터 개방했다. 이에 따라 방콕 도심 일부도 침수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방콕에서는 홍수 경보가 내려진 지역이 기존 동부 7개 구역에서 이날 9개로 늘어났다. /로이터 뉴시스
대신 방콕을 흐르는 19개 주요 운하의 수문(水門)을 열어 일부 물길을 방콕 시내 쪽으로 유입시킨 뒤 방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카오프라야 강에 실어 바다 쪽으로 빼내기로 했다. 이로 인해 방콕 동부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침수가 불가피해졌다. 태국 정부는 동부 7개 지역 주민에겐 대피를 준비하고 중요한 물건은 높은 곳으로 옮겨놓으라고 지시했고, 이미 침수가 진행 중인 북부 3개 소(小)지역에선 대피소를 지정해 피신하라고 권고했다.

기자가 21일 찾아간 방콕 동부의 방쑤와 쌈쎈 지역의 운하는 아직 이 일대 수문을 채 1m도 열지 않았지만 물이 전날보다 눈에 띄게 불어났다. 또 전날 정부가 대피 지역으로 지정한 방콕 북부 돈 므앙 지역의 프라파 운하가 방콕 시내 방향으로 넘쳐흘러 일부 주택지역이 침수됐다고 방콕포스트가 보도했다. 이날 태국 정부는 이번 수해로 인한 공식 사망자 수가 342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태국사무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침수지역에서 2~3시간 정도 떨어진 남쪽 파타야 주변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소업체들이 몰려 있어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지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아유타야 등지에 산재한 10개 미만의 국내 중소기업이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현지에서 여행사와 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는 교민들은 관광객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