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북부 방벽 붕괴, 대피령
당국 "예상보다 상황 심각"
주민들에 마실 물 비축 권고
'홍수 예방을 위해 이쪽 방향 출구는 일시적으로 폐쇄됐습니다.'25일 오전 11시쯤(이하 현지시각) 태국 수도 방콕의 지하철(MRT)을 타고 북쪽 종점인 방쑤역에 내리자 1번 출구가 폐쇄됐다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방쑤는 이미 침수가 진행된 돈 므앙 등과 함께 수쿰판 빠리밧 방콕 시장이 침수 우려 지역으로 꼽은 방콕 내 6곳 중 하나다. '툭툭(영업용 세발 오토바이)' 기사에게 근처 차오프라야강 보트 선착장으로 가자고 했더니 주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차오프라야강 수위는 전날 2.3m를 기록했다. 이전 최고기록 2.27m(1995년)를 넘은 사상 최고치다. 빠리밧 시장은 이날 "차오프라야강 수위가 다음 주 중 2.6m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강 주변에 쌓아 놓은 제방보다도 10㎝가량 높은 수준이다. 방콕에 파견 근무 중인 한국수자원공사의 박우하 박사는 "방콕은 평균 해발고도가 채 1m가 안 될 정도로 도시 전체가 저(低)지대여서 강 주변에 제방을 쌓아놨다"며 "제방 높이를 넘는 물은 곧바로 인근 지대를 침수시킨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찾아간 방포 선착장은 이미 허벅지 높이까지 물에 잠겨 있었고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흐르며 방콕 시민들의 출퇴근 택시 역할을 하는 고속보트는 영업을 중단했다. 방콕 북서부 파툼타니에 있는 수상택시용 주유시설도 물에 잠겼다. 강 주변 침수 상황을 보러 나왔다는 마크(39)씨는 "이미 (북서쪽) 논타부리 지역은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들었다"며 "이곳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게 시간문제 같다"고 말했다.
- ▲ 방콕 중심가 장애노인 대피… 최악의 홍수피해를 겪고 있는 태국 방콕 중심가에서 25일 자원봉사자들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할머니를 대피시키고 있다. 당국은 아유타야 지역으로부터 거대한 양의 물이 들이닥쳐 방콕 차오프라야강 수위를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방콕 주민들에게 식수를 비축하고 고지대로 대피하라고 당부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처럼 방콕의 상황은 비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6일 40억㎥에 달하는 물 폭탄이 방콕 서쪽을 강타하는 데 이어 오는 30~31일 타이만(灣)이 만조가 돼 도시에 갇힌 물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만 해도 방콕 북부 돈 므앙과의 접경지역인 파툼타니주(州) 라크 호크 지역의 방벽이 갑자기 무너져 정부가 이 일대 최대 주거단지인 므앙 에크 등지 주민들에게 긴급대피를 명령했다. 이 일대 침수 수위는 1~1.5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방콕 도심은 이제 생업보다 생존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수해지역에 본부를 둔 택시회사들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수해를 입은 택시기사들이 일을 그만두면서 현재 방콕을 돌아다니는 택시 수가 절반 수준으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정부는 전날 '수도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해 보인다'며 방콕 주민들에게 식수를 비축해 두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