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스크랩] 베트남 참전용사의 빛바랜 陣中日記

청 송 2014. 6. 9. 21:26

“강재구 소령 수류탄 덮치는 모습 바로 곁에서 봐” 베트남 참전용사의 빛바랜 陣中日記

  • 金泰完 月刊朝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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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6.06 15:55 | 수정 : 2014.06.06 16:11

    ⊙ 포연이 가득한 격전지에서 매일 일기 써… 1965년 9월 24일~67년 5월 14일
    ⊙ 越南에서 돌아와 3년 뒤 派獨 광부가 돼 지하 850m 막장에서 일해

    
	“강재구 소령 수류탄 덮치는 모습 바로 곁에서 봐” 베트남 참전용사의 빛바랜 陣中日記
    《월간조선》은 2014년 2월호와 3월호에 걸쳐 <맥깨비 연대장, 이범영(李範英) 대령의 6·25와 베트남전쟁>을 연재했다. 이번 호에는 맹호부대 전투 보병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또 다른 이범영(李範永·72)씨의 진중일기(陣中日記)를 발췌해 싣는다.

    참전한 젊은 병사의 내적 갈등이 사실적으로 기록된 이 일기는, 파월(派越) 준비 기간이던 1965년 9월 24일부터 시작해 67년 5월 14일까지 씌어졌다. 이씨는 앞장서 전장(戰場)을 지휘한 장교도, 장군도 아니었지만 그가 쓴 기록은 ‘작은’ 현대사를 굽이쳐 온 지류(支流)일지 모른다.

    그가 진중일기를 《월간조선》에 전달한 사연은 이렇다. 지난 3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박경석 예비역 장군’의 인터뷰를 읽고 이씨가 장문의 편지를 신문사로 보내왔다. 박 장군은 지난해 국립묘지 사병 묘역에 안장된 고(故) 채명신 파월사령관의 전기(傳記)를 쓴 인물이다. 고인은 생전 “장군은 봉분 있는 8평 자리에 묻고, 사병은 화장해 1평짜리 묘에 안장하는 규정은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말했었다.

    이씨는 “그 인터뷰를 읽고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정말 감격스러웠다”며 “당시 채명신 장군은 제 대대장님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전쟁터에서 쓴 일기가 있다”고 전해왔고, 《월간조선》은 약 50년 전에 기록된 빛바랜 일기장을 입수할 수 있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과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해 갔어요. 땀과 비에 젖은 종이를 참호 속에서도 잘 지켜 작전이 끝나면 일기장에 옮겨 적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마치 기적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한 마지막 훈련 도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보고 몸을 던져 산화한 고(故) 강재구 소령에 대한 기억도 실려 있다. 1965년 10월 4일의 일이다. 이씨는 바로 곁에서 참상(慘狀)을 지켜봤다고 한다.

    “제 옆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수류탄이 터지고 하늘로 검은 물체가 튕겨 올랐는데, 가만히 보니 강재구 소령님의 다리였어요. 그래도 사고 직후엔 살아계셨어요. 신음을 하고, 대원들이 달려가 지혈을 했지요. 그분은 동료 부대원이 잘못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깔고 앉으려 했어요.”

    
	“강재구 소령 수류탄 덮치는 모습 바로 곁에서 봐” 베트남 참전용사의 빛바랜 陣中日記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 오늘은 내 일생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큰소리로 수류탄 투척 요령을 일러주시던 강재구 중대장님이 불과 몇 분도 되기 전에 부하 대원이 잘못 던진 수류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내 동료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되받아 던지려다 그만 실패하자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사랑하는 부하들을 죽음으로부터 살려낸 ‘인간 강재구 대위님’. 나는 그 위대한 희생정신을 하늘같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派獨 광부가 되어

    이씨는 57mm 무반동총을 메고 정글 속 사방팔방 총격과 포격의 현장에서 베트콩과 맞서 싸웠다. 1966년 3월 23일 자 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 나는 어깨에 멘 포탄을 꺼내 재빨리 포미에 장전하고 사수에게 완료 사인을 보내자 김선경 사수는 낮은 자세로 조준하더니 ‘꽝!’ 발사한다. 4~5명가량 될까? 우리에게 총격을 가하며 내뛰던 적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더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최초로 적이 쓰러진 것을 목격한 것이다.…>

    이씨는 1944년 경기도 김포에서 농사짓던 집안의 9남매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영등포 문래동 농산물검사소에서 급사(시험보조원)로 일하다 참전했다.

    “제가 키도 작고 볼품은 없었지만 일을 잘했어요. 3년 정도 근무하다가 1965년 3월 입대했죠. 그때가 혈기왕성한 스물한 살 때였어요. 저는 월남에 가고 싶었어요.”

    당시 사병의 전투수당은 하루 1달러. 그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송금했다. 유일한 낙은 무학여고 1학년이던 김동연 양이 보내온 위문편지였다. 그 편지 묶음을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다. “가끔 생각이 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죽음을 앞둔 현장에서 읽던 편지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제대 후 고향에서 감자농사를 짓다 철도청 소속 무장청원경찰이 되었다. 당시는 국내에 무장 공비(共匪)들이 빈번하게 출몰하던 시절이었다. 후방의 국가 주요시설 보호를 위해 월남전 참전 용사를 우선해 뽑았다.

    “호기심이 당겨서 신청했더니 지원자가 얼마나 많던지…. 별도 훈련도 없이 1968년 한강철교 경계업무를 맡게 됐어요. 몇 개월 지나니 자꾸 동료들이 바뀌어요. 월남 참전 안 한 사람이 자꾸 ‘백’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얼마 후 저는 경춘선(京春線) 강촌 구간 철도를 지키게 됐어요.”

    그러던 중 파독(派獨)광부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했고, 결국 1970년 7월 독일 함부르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월남전에서도 살아왔는데 두려울 게 뭔가. 바깥세상의 큰물을 한번 먹어보자”며 지원했다고 한다. 그가 배치받은 독일 딘스라켄 인근 광산은 수직으로 850m를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다시 수평으로 140m를 걸어가야 일터가 나왔다.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깡다구’ 하나로 일했다.

    “참… 여기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고 입 주변이 부르텄지만 이를 악물었어요. 병·연가 한 번 안 쓰고 일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해야 한국에서 더 많은 광부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국 위해 싸운 勇士의 기록

    막장 일은 너무 힘들어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이후 독일인 ‘마이스터’가 ‘기계 수리공’으로 보직을 옮겨주었다.

    “처음에는 빚 갚는다고 고향으로 월급을 다 보냈어요. 한 달에 700마르크 정도를 받았으니까… 3년 일하면 서울에 좋은 양옥집을 살 수 있는 때였습니다. 휴일은 물론 연장근무까지 신청해 지독하게 일했어요.”

    이씨는 독일에서 만난 파독 간호사와 1975년 결혼했고 2년 뒤 귀국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아내는 1995년 암으로 사망했다.

    “제겐 좋은 집안도, 배경도 없습니다. 오직 젊은 몸뚱어리 하나로 살기 위해 죽어라 일했어요. 그야말로 젊음을 불태우며 살았습니다. 당시 전장에서 쓴 일기는 조국을 위해, 국군의 명예를 걸고 용감하게 싸운 무명(無名)용사의 기록입니다.”

    1965년 10월 4일 월요일 맑음

    오늘은 내 일생에 잊으려야 잊어버릴 수 없는 날이 되고 말았다.

    “이 수류탄의 위력을 보라!” 하고 쩌렁쩌렁 말하며 수류탄 투척 시범훈련을 같이하던 강재구 중대장님이 불과 한순간에 불의의 수류탄 사고로 명을 달리하셨으니 나는 물론 전 중대원이 놀라움과 슬픔에 빠지고 말았다.

    당신이 지휘하고 사랑하는 부하를 살리기 위해 분대원이 잘못 던진 수류탄을 되받아 던지려고 하다 그만 실패하자 스스로 그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옆에 있던 수많은 부하들을 죽음으로부터 살린 숭고한 인간 강재구 대위….

    그는 너무나 훌륭하고 위대한 군인정신의 참 군인이다. 나는 그 위대한 군인정신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난 한 사람의 실수가 얼마나 무섭고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

    12사단 신병중대 때부터 같이 근무하던 박권식이도 불의의 부상을 당하여 후송을 가는 바람에 그가 차던 탄띠를 힘없이 어깨에 둘러매고 막사로 귀대하니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 같다. 그토록 인자하고 중대원에게 친절하던 강재구 중대장님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니, 운명이란 우리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눈을 감고 고 강재구 대위님, 아니 우리 중대장님의 명복을 마음속 깊이 빌었다. 또한 우리 분대에서 부상당한 전우들의 완쾌를 빌었다. 그 이름 박권식 일병과 박해찬 일병.

    1965년 10월 5일 화요일 맑음

    오늘부터 우리 중대는 강재구 중대다.

    “우리 대대는 오늘부터 재구대대로 발령되었으니 전 대대장병들은 강재구 소령의 희생정신을 받들어 더욱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라.” 박경석 대대장님의 훈시였다. 고 강재구 소령님, 오늘도 나는 그 씩씩한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아 목이 멘다.

    오후에는 “존경하는 중대장님을 잃었다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슬퍼하고 그분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소대장님의 훈시를 듣는다.

    그렇다! 우리는 할 일이 너무나 많고 앞으로 괴로움과 고통스런 일들이 얼마나 더 많이 닥쳐올지 모른다. 우리는 그 많은 일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 언제까지나 유명을 달리하신 그분만을 생각하며 슬퍼하거나 애통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투철한 희생정신과 군인정신을 이어받고 앞으로의 일에 더욱 대비하자. 신임 중대장님으로 대대작전 참모인 이규봉 대위가 부임해 왔다. 오! 신이시여~! 우리 부대의 앞날에 무운과 행운을 주시옵소서! 영광된 일만을 주시옵소서!!

    1965년 10월 16일 토요일 맑음

    어제 부산항에 도착한 우리 부대는 난생처음 미군 수송함에서 하룻밤을 잤다. 수송함 이름 ‘제네널 앨틴저’호. 1만3000t급 함으로 3000명이 타고 3개월간 바다 위에서 작전할 수 있단다. 개미집 같은 함내 미로에 대원들은 서로 통로를 잃고 우왕좌왕하는데 오전 10시경, 누군가 “야~! 함이 움직인다!”고 소리친다.

    재빨리 갑판으로 뛰어 올라가 보니 정말 육중하고 거대한 함이 서서히 부두를 떠나고 있다. 부두를 가득 메운 시민과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멀어져 가는 우리 파월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었다.

    정말 고국을 떠나는구나. 점점 멀어져 가는 부산항. 마지막 작별하듯 아물아물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오륙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 땅, 내 조국. 이제 나는 내 조상이 묻히고 내가 또 묻힐 나의 나라 내 땅을 떠나고 마는구나!

    월남전선에서 살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나의 조국이여! 난 당신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난 언젠가는 반드시 살아 당신의 따듯한 품 안에 안길 것입니다.

    내 눈에 다시금 눈물이 솟구친다. 내가 파월 되어 간다는 것을 늙으신 부모님께는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형님께 신신당부 드리긴 했지만, 만약 부모님이 아신다면 태산 같은 근심걱정을 하시겠지. 거칠고 투박스런 아버지의 모습이, 하얀 머리칼 한 줌을 뒤로 묶으신 어머니의 주름진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나를 붙잡는 것 같다. 가족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영사기 화면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철부지 막내동생 효순이가 오빠! 오빠~! 소리쳐 부르며 따라오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게 저며온다.

    “전달! 전달! 전 장병은 중대별로 즉시 집결하라! 신속히 행동하라!”

    함내 스피커의 메아리 소리가 순간적으로 가족들로부터 나를 떼어놓는다.

    “이 순간부터 너희는 나와 생사를 같이한다. 어떤 극한사항이 닥쳐오더라도 내 명령에 절대복종하라.”

    중대장님의 예리한 훈시를 듣고 다시 갑판으로 올라왔다. 우리를 태운 함은 점점 속력을 내 흰 물거품을 힘차게 내며 달린다. 온 바다가 어두워지자 함은 일본의 어느 항구를 좌현에 두고 남서방향으로 항진을 계속한다.

    1965년 10월 22일 금요일 비

    오늘은 나에게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이다.

    상륙정 L.V.T를 타고 월남 육지에 상륙하는 순간 나는 흥분과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바로 이곳은 퀴논항 근처의 붉은 모래 해변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우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수송차량에 분승하여 주둔지로 출발하였다.

    얼마 후 기차로 갈아타고 어디론가 다시 떠났다.

    처음 보는 진기한 풍경들, 야자나무와 바나나 숲들이 긴장된 마음을 잠시 풀어주는 듯했지만, 모두가 비장한 눈빛들이다.

    우리는 열차 안에서 처음으로 C-레이션을 먹었는데 누군가가 “야! 이렇게 한국에서 준다면 말뚝 박겠다”고 말해 긴장 속에서도 한바탕 웃었다.

    그럴 만도 하지, 보리밥에 된장국만 먹다가 C-레이션에는 고기에, 빵에, 우유에, 커피에, 양담배에 거기다 보들보들한 휴지와 껌까지 끼니마다 나오니 말뚝이 아니라 콘크리트라도 칠 판이다.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우리 분대는 즉시 제1소대에 배속되어(우리 분대는 화기소대 57mm 무반동총 분대고 나는 부사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야트막한 야산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처음 대해보는 월남의 야전상황은 말 그대로 정글의 연속이다.

    옷 속 깊이 파고들어 깨무는 갈색 개미떼, 날이 어두워지자 달려드는 모기떼, 거의 산정상에 오를 무렵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런데 중대CP에서 본대로 귀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하산을 시작하다가 그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소대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고 말았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모기들의 공격, 간간이 전방고지 계곡에 떨어져 터지는 포탄 소리는 우리를 초긴장의 공포 속으로 몰아놓고 있었다.

    소대 무전병의 무전기에서 우리를 찾는 중대장님의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우리 소대는 방향을 상실한 상태라 전 대원은 실탄이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움켜쥐고 긴장은 폭발 직전이었다.

    전 소대원의 운명을 책임진 소대장은 “우리 이렇게 된 이상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자”고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열차에서 내린 지점까지 간신히 도착해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중대와 무선교신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우리를 찾아 나선 중대부관 수색조와 교신하는 데 성공하여 한밤중 중대CP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아~휴! 긴~안도와 함께 꼭 지옥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전쟁영화나 소설 속의 그 멋진 장면처럼,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맘이 들떠, 죽음과 무서움을 상상조차 않고 월남파병에 지원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떡하랴, 이미 이렇게 여기 와있는걸. 아이구~, 하느님! 제가 죽을 곳에 왔나 봅니다! 무슨 죄로, 저를 이 지옥에 오게 했습니까! 너무하십니다! 예라~! 이놈아~~! 여긴 지옥 아니고 네놈이 가고 싶어 안달하던 월남 땅이다~, 이놈아!! ~뒈지고 싶지 않으면 정신 바짝 차려라~ 이놈아!

    하지만 하느님~, 지옥이 어디 따로 있나요? 이곳이 바로 지옥이지요!

    나는 교회나 절에 다니지도 않으면서 어느새 내가 월남에 온 책임을 알지도 보지도 못한 하느님께 떠넘기고 있었다. 어려울 때는 매달리고 좋을 때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그래서 종교, 하느님은 참 좋은 것이다. 방아쇠를 움켜쥔 손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1965년 10월 23일 토요일 맑음

    생전 처음 월남전선 하늘 아래서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날씨는 왜 이다지 구질구질한지, 밤새 비를 맞으며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산은 온통 정글로 이름 모를 나무와 식물들이 인간의 접근을 막기라도 하듯 엉켜 있다. 월남의 반딧불은 플래시 불빛처럼 밝은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데 주위 환경이 한국과 비슷한 데도 있다. 해안지대와 근접하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바람도 분다.

    농촌지역 모습은 한국과 비교하면 아주 이채롭게 보이고, 집들은 불란서식 집들이 꽤 많이 보인다. 사람의 손이 가긴 하는지 벼들은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주둔지에서 우리 군 트럭을 만났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追記) 어젯밤은 정말 무서운 밤이었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모기는 성난 폭격기같이 달려들고 사방에서 포성과 총성이 들려왔다. 때로는 조명탄이 하늘 높이 올라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혀놓기도 했다. 이재후 일병과 처음으로 주간 경계보초를 서는데 개 한 마리가 숲에서 뛰쳐나와 얼마나 놀랐는지, 주둔하던 지점에서 다시 이동 또 이동… 2번이나 이동해 진지를 구축하느라 너무나 힘들었다.

    1965년 10월 26일 화요일 맑음

    어젯밤 야간근무 중 갑자기 총성이 나고 좀 지나자 여기저기서 수십 발의 총성이 계속된다. 난 재빨리 방아쇠의 안전핀을 풀고 전방을 응시, 총소리는 계속되고 유탄은 머리 위를 공기를 가르는 피~융!~ 소리를 내면서 스쳐 지나간다.

    아이구! 드디어 적이 나타났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방아쇠 안의 손가락은 굳어 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총성은 간격을 두고 계속된다.

    전 분대원은 각자 위치에서 전투태세를 유지하면서 꼬박 밤을 새웠다. 날이 새고 확인해 보니 산짐승을 적으로 오인하고 사격을 개시, 이에 옆 근무자가 놀라 사격하고 또 옆 사람이 사격하고, 이렇게 해서 전 중대 비상과 함께 사격을 한 걸로 밝혀졌다. 제기랄, 짐승하고 전투를 하다니!

    1965년 12월 19일 일요일 비

    일기장으로 쓰던 수첩이 다 되어 오늘부터 새 노트로 옮겨서 쓴다. 오늘 국영이가 만년필과 노트를 사왔다. 그간 여러 번 부탁을 했지만 그도 맡은 바 임무 때문에 오늘에야 사온 것이다.

    오늘도 비는 억수처럼 쏟아지고, 우기라 오는 비긴 하지만 모두 쓸데없는 비다.

    벌써 며칠째 오는 비다. 오늘 밤에도 보초를 설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오늘따라 소대장이 야간근무 잘 서라고 일일이 당부를 한다.

    어제 온 부산 설연순 학생의 위문편지에 답장을 써놨다. 좋은 건 아니지만 카드도 같이 동봉했다. 작은 형님과 홍매한테도 카드 한 장씩을 보냈다. 홍매한테는 무슨 이유 때문에 편지를 또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젯밤에도 보초 서면서 그녀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온 내가, 옛날 생각을 계속 이렇게 하다니, 이상할 정도로 홍매가 생각나는 건 그녀에게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까?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대원들과 웃기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오늘 같은 현실에선 어쩔 수 없이 이렇게라도 보내야지.

    1966년 1월 1일 토요일 흐림

    우리 맹호부대 재구대대 대원들께 신의 가호가 있기를.

    1966년 새해 아침이 밝아왔다. 긴장이 계속되는 밤의 적막을 헤치고 휴식 없는 격전지에 새해가 눈부시게 밝아왔다. 이역만리 월남전선에서 1965년을 보내고 신년 1966년을 맞이하는 내 마음은 즐겁고, 한편으론 착잡한 마음이기도 하다.

    고국이라면 지금쯤 집에서 조상들께 차례를 드리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텐데 그러나 난 지금 월남전선에 와 있다. 왜? 우방국을 돕고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자유를 망각하고 선한 양민들의 피를 착취하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우리의 우방인 자유월남을 구하기 위하여 여기 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자유란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가슴속 깊이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오! 신이시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 젊은 용사들을 보살펴주소서!

    1966년 1월 5일 수요일 맑음

    갑자기 들려오는 기관총 소리, 총탄은 쉴 새 없이 공기를 가르며 매서운 소리를 내면서 머리 위를 낮게 스쳐 지나간다. 곧이어 불어대는 비상나팔 소리~.

    “전원 전투 준비! 전원 전투 준비!”

    계속되는 명령하달 속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총과 철모를 들고 전투진지인 참호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이구! 이제야 붙었구나! 나는 잽싸게 57mm 무반동총에 포탄을 장전하고 칼빈 자동소총에는 30발 탄창을 끼워넣었다.

    수류탄도 통에서 꺼내놓고 우리 진지 앞 철조망에 적이 기어오르길 기다렸다. 잠시 후 중대진지 외곽 지역에서 간간이 총격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아군 박격포 포격이 시작되었다.

    적이 철조망 근처까지 접근해 사격을 가해오자 아군 박격포탄 탄착지점도 철조망 가까이 근접포격으로 바뀌었다. 근접지점에서 포탄이 터지니 폭음은 천지를 울리며 흙먼지를 휘날린다.

    베트콩의 기습총격은 9~11시 방향에서 계속되고 중대 박격포 포격도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사격지역이 제1소대 정면이라 소대화력이 그곳으로 집중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11시 방향에서 날아오던 총탄이 아군의 집중된 화력에 제압되었는지 조용해진다.

    곧이어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지고 동시에 불을 토하던 박격포도 입을 다문다.

    “각 분대 피해사항 있으면 보고하라.” “57mm분대 이상무!!” “좋아~, 잘해냈다.”

    오늘 밤 적의 기습은 중대장님의 재빠른 상황판단과 전 중대원들의 신속한 전투 준비와 즉각적인 응사 그리고 집중된 화력의 위력이 아군의 피해 없이 적의 기습을 물리친 요인이 된 것 같다.

    그들은 이렇게 치고 빠지는 전술로 우리를 괴롭히고 피로하게 만들려는 모양이다. 비상이 해제되자 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휴~!! 살았다를 연발했다.

    상황이 끝나자 나는 탄약과 수류탄을 제자리에 정리해 놓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체 잠이 안 온다. 만약 아까처럼 적이 우리 정면으로 기습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하지? 먼저 총으로 쏠까? 아니면 수류탄으로 대항할까? 그래, 한두 놈이면 소총으로 쏘고 여러 명이면 수류탄이나 57mm탄을 쏴야지.

    1966년 1월 7일 금요일 맑음

    아침 일찍 중대CP 후면으로 주간 경계근무를 나갔다. 경계근무지 바로 눈앞에 불탄 집들이 드문드문 서 있어서 뭔가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재후 일병과 같이 철저한 수색을 해봤다. 수색을 한참 하는데 장사꾼인 듯 여러 사람이 몰려오는데 그 가운데 어린 소녀가 무거운 짐을 메고 힘겹게 우리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문득, 고국에 있는 동생들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렇게도 동생과 비슷할까? 그들을 잠시 서 있게 하고 “짜웅~”(안녕) 하니까 그 소녀는 두려운 듯 무표정하게 같이 “짜웅” 한다.

    우리가 먹다 남은 빵과 잼 과자를 한 상자 주니까 그제야 좋아라 씩 웃으며 뭐라고 인사를 하며 총총걸음으로 앞서 간 상인들을 부지런히 뒤쫓아가는 소녀를 보노라니 불쌍한 생각이 든다. 왜 저 소녀는 벌써부터 힘든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걸까?

    참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든다. 굴곡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왜 저 어린 소녀에게까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하느님은, 정말 있는 걸까? 소녀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1966년 1월 14일 수요일 맑고 비

    어젯밤 진지 안으로 날아와 터진 적의 82mm 박격포탄이 언제 또다시 날아올지 몰라 하루종일 초 긴장상태로 보냈다. 오늘부터는 집단행동이나 태권도 훈련도 중지됐다. 여럿이 모여 있다가 적 포탄이 날아와 터지는 날에는 사상자가 크게 날까 우려해 모여 있지 말라는 지시다.

    총과 철모를 옆에 꼭 챙겨두고 눕기는 했지만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가끔 바람이 불어 철조망에 달아논 빈 깡통이 소리라도 낼 때면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래도 잠은 찾아오는데…, 저 여자가 누구더라! 전부터 아는 여잔데 어디서 만났던 여자지? 홍매 같기도 하고 얼마 전 편지해 준 연이 계집애 같기도 한데…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그녀의 인사가 아주 상냥하다.

    아니,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그녀의 집 같기도 하다. 우리는 반가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와 나는 서로 포옹하며 달콤한 키스를 한다. 매우 강렬한 키스다. 나도 그녀도 우린 서로 좋아하고 있다.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2층 마루로 올라갔다. 그러자 방문이 스스로 열리면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안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가 여인의 살 내음이라고 느껴져 더욱 기분이 좋아지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은은한 음악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난 빨리 방에 들어가 그녀를 꼭 안고 싶을 뿐 다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은 왜 이렇게 무거운지 있는 힘을 다해 방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방문이 다 열리자 불빛이 점점 강해지며 음악 소리도 크게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사람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사람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내 의식 속으로 들어오더니 내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야! 일어나~ 교대시간이야~!”

    재후 일병이 총 개머리판으로 내 엉덩이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아이고~! 조금만 더 있다 깨우지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깨우다니…. 너무나 섭섭한 마음에 맥이 쭉 빠지는 것만 같다. 꿈치고는 너무 아쉬운 꿈이다. 진작 빨리 방에 들어가야 하는 건데….

    1966년 1월 18일 화요일 맑음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 미해병대 소속 헬기들이 제9중대 병력을 싣고 하나둘 편대를 이루며 동쪽으로 사라진다. 이제 우리 분대 차례다. 그때 박경석 대대장님이 우리 쪽으로 오더니 선발 제9중대장에게 소리치듯 “비겁하게 후퇴하는 자 있으면 쏴! 대대장인 내가 책임진다”며 큰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우릴 쳐다보며 “잘해야 한다~, 명령에 잘 따르고!”라 말한다. 그 소리에 장병들은 “옛! 알았습니다~!”고 답한다.

    대대장님 허리에 찬 권총이 오늘따라 꽤 커 보인다. 9중대장님이 우리를 향해 “배속 57mm분대 헬기에 탑승하라! 목적지에 착륙하면 즉시 본대와 합류해 거리유지 하도록 하라”고 말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 분대는 시동을 걸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대기 중인 헬기에 잽싸게 탑승했다. 적지를 향해 날아간다.

    이제 몇 분, 조금 있으면 우린 전투를 치르겠지. 공포감으로 긴장이 온몸을 감싼다. 헬기 안 대원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긴장된 모습들이다. 헬기 안 조종석의 미군 대위와 중위가 번갈아 뒤돌아보며 장갑 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뭐라고 떠들어대지만 내 귀엔 OK 소리만 들릴 뿐 긴장과 요란한 엔진 소리가 온몸을 짓눌렀다.

    헬기 양옆에는 백인과 흑인 두 명의 대원이 배치되어 기관총을 아래로 겨눈 채, 그들도 긴장을 풀려는 듯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흰 이를 드러내 웃으면서 뭐라고 말을 거는데 난 도무지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끄덕였다. 그 흑인병도 동감한다는 듯 끄덕한다.

    헬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고 멋지다. 높고 낮은 산과 넓은 들판, 그리고 끝없이 굽이쳐 흐르는 작은 강, 점점이 박혀 있는 파란 호수들, 마치 한 장의 풍경화 사진을 보는 듯하다.

    나는 전투에 대한 공포와 조바심을 저 자연의 풍경으로 지우려고 애써보지만 좀체 긴장은 가시지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헬기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산 위를 선회하고 있고 무장 호위헬기들이 기관총과 로켓탄을 착륙지점에 퍼붓고 있었다. 잠시 후 조종사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며 착륙한다는 신호를 하더니 이내 기체가 급강하,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그러나 착륙지점의 지형이 엉망이라 헬기 착륙이 불가능. 분대원들은 차례로 헬기에서 뛰어내려 재빨리 산개하며 엎드렸다. 헬기는 우리를 내팽개치듯 공중에서 떨어뜨리더니 계곡 밑으로 사라진다.

    벌써 선발 제9중대는 앞으로 전진하여 멀찌감치 대형을 유지하면서 포로인지 적인지 꽤 많은 사람을 개활지 한가운데 수용하고 있었다. 우리 분대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지점까지 진출하여 정위치를 확인하고 사격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렸으나 명령하달이 없어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적의 저항이 미약해 선발부대는 큰 저항 없이 목표지점을 점령한 것 같다. 이번 작전은 붉은 사막과 길게 뻗은 도로를 우로 하고, 좌로는 점점이 이어지는 야산과 크지 않은 평원, 그리고 군데군데 마을들이 이어지는 지형을 두고 전개되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분대는 제2고지를 오르기 위해 급경사의 모래계곡을 내려왔다. 밑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천길만길 낭떠러지가 마치 지옥문의 입구처럼 입을 벌리고 있어 현기증이 난다. 계곡을 내려온 우리 분대는 제2고지를 점령해 적의 야습에 대비하면서 제9중대와 함께 야간작전에 돌입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실로 아름답기만 했다. 뒤로는 시원한 푸른 바다가 지평선까지 보이고 앞으로는 붉은 사막과 나지막한 산, 우거진 들판 그리고 띄엄띄엄 마을들이 이어져 있다.

    (밤의 공포,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고지 위에 어둠이 서서히 엄습해 왔다. 시원하던 바람은 돌연 한풍으로 변해 무섭게 불어온다. 가끔 캄캄한 밤하늘에 조명탄이 오르며 대낮같이 밝혀준다. 혹시 적의 내습이 있을까 해서다. 인기척 하나 없는 무서운 밤, 멀리서 파도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오늘 밤 전투가 붙을까? 아니면 무사히 작전이 끝나 내일 돌아갈까? 이 무섭고 긴장된 밤이지만 졸음은 찾아온다. 슬며시, 아무도 모르게 스며오는 졸음. 한밤중이 되자 말할 수 없이 추워져 온몸이 떨린다. 몸에 이상이라도 나려는지 겁나게 떨린다. 월남이 열대지방이라 더운 줄만 알았지 이렇게 추울지는 미처 몰랐다.

    어두운 밤 가끔 쏘아 올리는 조명탄으로 긴장이 그나마 한결 풀리는 것 같다. 밤이 얼마나 지났을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을 쳐다보니 큼직한 먹장구름이 머리 위를 지나간다. 제발 아무 일 없이 이 밤이 지나가야 할 텐데….

    길고도 긴장된 시간은 어느덧 흘러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온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거무튀튀한 모습들이 긴장으로 폭발할 듯했는데 서로 바라보며 다정한 전우들로 변한다.

    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1966년 1월 27일 목요일 맑음

    D-데이 늦은 아침, 반 공개적인 부대 이동이다.

    1번 국도를 따라가다 철로변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동해 우리 중대는 녹슨 철길 둔덕 위에 몸을 바짝 붙이고 공격명령을 기다렸다.

    조바심 나는 1~2분이 지나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아군포대 105mm포의 엄호포격이 시작됐다. 포탄은 공격지점에 정확히 낙하해 폭음과 함께 검붉은 화염과 흙먼지를 하늘 높이 날리며 터진다. 참으로 통쾌하고 시원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포탄은 차차 우리 머리 위를 낮게 날아 전방 300m 지점 앞에서 작렬한다. 그때마다 고막이 터질 것처럼 귀가 따갑고 먹먹해진다. 그뿐인가, 아군이 엎드려 있는 지점까지 파편이 흙모래를 튀기며 떨어져 자라처럼 몸을 움츠리게 한다.

    10여 분의 엄호포격이 끝나고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철길 좌우에 포진해 있던 전 중대원을 둘러본 후 중대장님이 명령을 내린다.

    “각 소대는 목표지점을 공격 점령하라!”

    곧이어 “사수! 우전방 200m 지점에 사격!” 분대장이 소리친다. 나는 재빠르게 무반동총에 포탄을 장전하고 사수의 철모에 주먹으로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귀가 먹먹하도록 꽝! 소리를 내며 불을 토하는 무반동총. 전방 야자나무 숲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통쾌하기 짝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LMG와 자동소총들이 콩 볶듯 맹렬히 총격을 해댄다. 우리는 9중대에서 지원나온 1개 소대의 지원요청에 그들의 진격목표 지점에 몇 발의 지원사격을 하고 그들이 무사히 목표에 진출하는 것을 확인한 후 원래 배속소대인 제2소대 진격 방향으로 진출해 갔다.

    첫 번째 목표가 점령되자 잠시 후 아군의 105mm포가 다시 엄호포격을 가한다.

    포탄 낙하지점이 아군의 진출지점과 너무 가까워 포탄이 터질 때마다 파편이 우리 좌우에 마구 떨어진다. 그래도 포격은 계속되고,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 매캐한 화약 내음과 요란한 총격 소리는 실로 전투의 짜릿한 긴장감을 마음껏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 무섭던 전쟁 공포감과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전방을 향해 사격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계속해 아군의 포 지원하에 전방으로 진출하니 우거진 야자숲과 주인 잃은 소, 돼지들이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 날뛰고 있다. 적진 어디를 가나 견고한 벙커와 교통호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고 여기저기 장애물이 설치돼 있어 적의 근거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중대는 오후가 되자 야간 매복작전 준비에 들어갔다.

    1966년 1월 28일 금요일 비

    어젯밤 전 중대가 아군의 지속적인 엄호포격 속에 원형진지를 형성하며 매복으로 밤을 지새웠다. 적진 한가운데서 야간매복이라 긴장과 두려움이 극에 달했지만 모기들의 극성이 더 심했다. 안개 낀 이른 아침 야전식을 끝내자마자 소탕작전이 계속됐다.

    월남전선의 특징인 늪지대는 무릎까지 빠지는 통에 앞으로 진격해 나가는 데 어려움이 말이 아니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전방 3시 방향에서 타다탕! 타다탕!~탕! 총탄이 날아왔다. “적이다! 사격하라!” 누군가 외쳐댄다. 저 멀리 2명의 도주하는 적이 목격되자 사격이 집중됐다.

    “소화기론 안 되겠다! 57mm로 쏴버려!” 소대장이 소리친다. 명령이 떨어지자 분대장이 외친다. “포탄 장전!” “거리 500!” “준비됐으면 발사!” 나는 재빠르게 57mm 포미에 탄을 장전하고 사수 허리를 꽉 붙잡는다. 꽝~! 포탄이 발사되고 곧이어 전방의 도주로 정면에 검은 연기가 치솟더니 도주하던 적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우리보다 왼쪽 방향에서 소탕전을 벌이던 제3소대는 소련제 기관총을 적으로부터 노획했다. 미 공군기의 엄호 폭격과 기총소사를 하는 사이 중대는 진격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조진재와 이웅이가 그사이 야자 열매를 따왔다. 기막힌 훌륭한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쉬는 시간에 다른 대원들은 적의 벙커나 거처들을 수류탄으로 파괴하거나 소각을 했다. 흠뻑 비를 맞으며 연대장님과 대대장님이 마중하는 가운데 중대CP에 도착하니 모두가 안도의 환호성을 지른다. 흙물이 줄줄 흐르는 전투복을 갈아입고 모포에 몸을 파묻으니 마치 여인의 살갗이 닿듯 따스한 감촉이 온몸을 감싸온다. 이것이 진짜라면 얼마나 근사할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1966년 2월 2일 수요일 맑음

    갑자기 또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우리 중대 근처에 주둔해 있는 미(美) 육군 야전비행장으로 경비차 이동하라는 명령이 전해졌다. 모든 중대가 각자 부랴부랴 서둘러 저녁때까지 장비와 탄약 등을 비행장 외곽으로 옮겨놓았다. 당분간 미군들과 같이 지내니 편하게 근무하게 되겠지?

    늦은 저녁을 먹고 잡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방 10시 방향에서 번쩍! 하더니 꽝꽝!! 하면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울려온다. 이동해 온 지 불과 두 시간도 안 되는 때라 아군의 포격인가 했더니, 웬걸! 베트콩의 82mm 박격포탄 기습이 아닌가! 어둠을 틈탄 적의 박격포 공격은 가히 소름 끼치는 공격이 아닐 수 없다.

    계속적으로 꽝꽝꽝!!! 작렬하는 적의 포탄이 좌전방 9시 근처에 맹렬한 위력으로 폭음을 내면서 터진다. 벙커나 호도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재빠르게 레이션 박스 옆으로 총을 들고 엎드렸다. 계속되는 포탄의 폭발에 귀가 째지는 듯 아프게 울려온다. 몇 발이나 낙하했을까?

    야전 헬기비행장은 급작스런 헬기들의 이륙으로 온통 엔진 소리와 흙먼지 그리고 폭음으로 온 천지가 뒤집히는 듯 극한상황에 빠지고 있었다. 맨바닥에 엎드려 있던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얼른 개인호를 파기 시작했다. 죽을 힘을 다해 땅을 팠다. 아군 포대의 반격이 가열되고 대대CP 쪽에서도 조명탄을 쏘았다.

    가만 있자, 그렇다면 적이 양쪽으로 공격해 오는 것일까? 적의 박격포 공격이 우리 비행장 쪽으로 집중되고 있는 걸 보면 주공격 목표는 우리 쪽이겠지?

    비행장에서 이륙한 무장헬기들이 편대를 이루더니 드디어 기관총과 2.5인치 로켓탄을 적 포착 지점을 향해 사정없이 퍼붓기 시작한다. 밤하늘을 수놓는 예광탄, 진홍빛 불기둥을 뿜으며 내려꽂히는 로켓탄, 마치 아름다운 야광을 보는 느낌이다. 이래서 전쟁이 아름다운 예술 같다고 했나?

    저렇게 현란한 공중쇼가 또 있을까? 헬기의 공중공격이 끝나자 이번엔 105mm포가 불을 토해댄다. 이 급박한 사이에 나는 개인호를 팠다. 정말 어떻게 팠는지 생각조차 안 날 정도다. 예고 없는 적의 박격포 세례는 정말 두려움 그 자체다. 적은 아군의 반격에 기가 죽었는지 아니면 엄청난 화력에 직격탄을 맞았는지 1시간여 공방이 끝나고 침묵이 잠시 흘렀다.

    비행장은 이륙해서 멀리 피신해 갔던 수십 대의 헬기들이 비둘기 제집 찾아오듯 차례차례 제자리에 착륙하느라 또 한차례 야단법석이 시작되고 있었다. 역시 미군들은 대단하다.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 많은 헬기들이 순서대로 이륙하더니 이제는 역순으로 제자리로 찾아 내리는 그 모습에서 그들의 침착함과 용감함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미군 피해는 모르지만 우리 중대는 천만다행으로 근처에 직격탄이 안 떨어져 큰 피해는 없었다. 우리 장비도 피해 없이 온전해 안도의 숨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내가 파 놓은 개인호에 누군가 있어 발로 차며 “누구야!” 하니까 재후 일병이 쭈그리고 엎드려서 일어날 줄 모른다. 이런 죽일 놈 같으니!

    1966년 3월 23일 수요일 맑음

    고양이 낮잠 자듯 눈을 뜬 우리는 새벽 2시에 일어나 6시 공격을 앞두고 공격대기선(LD)을 향해 어둠을 이용, 78고지에서 제1소대를 선두로 제2소대가 그 뒤를, 중간에 중대본부가, 우리 화기소대가 그 뒤를 따르며 은밀한 야간 침투가 시작되었다. 무섭고도 캄캄한 밤은 당장에라도 적의 매복공격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무릎까지 쑥쑥 빠지는 늪과 논을 지나 몇 개의 크고 작은 내를 도하하는, 그야말로 숨 막히는 적중침투 행군이 계속되었다. 논둑길 앞과 옆에는 무수한 함정과 날카로운 대창, 장애물이 설치돼 전진을 막고 있었지만 선두 제1소대 첨병분대는 침착하고 노련하게 대창과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진격로를 터 나갔다.

    새벽 5시경, 날이 뿌옇게 밝아오는 공격 한 시간 전이다. 아군 포대가 엄호포격을 시작했다. 이미 정해진 작전 계획대로 정해진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포탄을 낙하시키는 아군의 포격술은 정말 기막힌 솜씨가 아닐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군의 엄호포격을 이용해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LD선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 전 중대병력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공격대기 지점에 엎드려 몸을 숨기며 공격시각을 기다렸다.

    공격개시 30분 전쯤인가? 검붉은 화염과 매캐한 화약 내음 속에 아군의 마지막 엄호포격인 듯 포격은 절정을 그리며 온 천지를 뒤집는다. 포탄이 머리 위를 아주 낮게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는 소름이 끼치도록 오금을 저리게 한다.

    공격 20분 전쯤 맹렬히 퍼붓던 아군의 포격이 일순간 그치고 몇 초간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미공군 전투기들이 편대를 이뤄 폭격이 시작된다.

    정말로 무서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강하하며 폭탄을 투하하고 이내 제비가 물차고 하늘로 오르듯 가볍게 치솟는 제트기들의 위용. 곧이어 로켓탄과 기관포탄을 마지막으로 갈겨댄다.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불기둥, 공기를 찢는 듯 가르며 머리 위를 낮게 스쳐 지나가는 전투기의 비행음, 아! 너무나 무섭고도 장엄한 순간이다.

    공격 10분 전쯤 제트기 편대가 긴 타원을 그리며 남쪽으로 사라지자, 이번엔 뒤에서 낮게 맴돌던 무장헬기들이 솔개가 병아리 보고 달려들 듯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로켓탄과 기관총을 목표지점에 정신없이 퍼붓기 시작한다. 이 잡듯 여기저기 누비며 어지럽게 퍼붓는 무장헬기들의 묘기, 너무나 치밀하고 정확한 포격과 공중공격, 정말로 대단한 협동 지원공격이 아닐 수가 없다.

    드디어 공격개시 시각이 되자 어둠은 완전히 가시고 아군의 포격이 다시 시작되면서 중대장님의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각 소대! 예정된 지점으로 공격하라!”

    쉴 틈을 주지 않고 떨어지는 아군의 엄호포탄이 눈부신 섬광을 번쩍이면서 터지고 온 천지가 초연으로 흐려지는 순간에 공격부대마다 일제히 총격을 가하며 적진을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우리 분대도 귀가 따갑도록 쏘아대는 총격 소리 속에 제1소대를 지원사격해 주며 서서히 한 발 한 발 전진을 계속했다. 우리 목표는 야자숲이 우거진 마을 전면이라 개활지를 통과해야만 했다. 무릎까지 빠지는 논바닥을 건너가자니 공격하기가 말이 아니었다.

    적에게 노출된 상태라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적의 첫째 목표가 되기 십상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움직여야만 했다. 논둑길에 올라서며 숨을 가다듬는 순간 전방에서 타다탕! 타타탕!! 자동화기가 총탄을 퍼붓기 시작한다.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 물방울을 튀기며 총탄이 떨어진다.

    “엎드려! 엎드려! 전방 정면이다! 엎드려!” 분대장이 가쁜 숨을 식식거리며 소리친다.

    아차! 우리 분대원들은 재빠르게 질퍽거리는 논바닥 얕은 논둑을 방패 삼아 엎드린다.

    전방을 응시하던 소대장이 소리친다. “57mm분대~! 2시 방향이다! 거리 400~500 지점이다! 사격하라~!”

    나는 어깨에 멘 포탄을 꺼내 재빨리 포미에 장전하고 사수에게 완료 사인을 보내자 김선경 사수는 낮은 자세로 조준하더니 “꽝!” 발사한다. 4~5명가량 될까? 우리에게 총격을 가하며 날뛰던 적은 그 자리에 푹석 주저앉더니 시야에서 사라진다.

    최초로 적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우리 분대는 흥분하기 시작, 전방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사정없이 사격을 가했다. 좌 전방에서도 총탄이 날아오는데 도무지 위치가 어딘지 모르겠다.

    땀과 진흙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공격 제1목표 마을을 성공적으로 점령했다.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벙커와 교통호들이 교묘히 위장되어 있었고 우거진 야자숲과 바나나숲, 열대림은 폭격에 쓰러져 전진과 수색하는 데 방해가 됐다.

    적의 은신처는 화염에 휩싸여 하늘 높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은 죽음의 문턱에서 허덕이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수용 수색하고 제2목표를 공격하기 위해 휴식과 준비에 들어갔다. 드넓은 지역에서 여러 부대가 사방에서 움직이며 전투를 벌이기 때문에 사방팔방에서 총격과 포격이 쉬지 않고 계속됐다. 잠시 쉬는 동안 우리가 최초에 대기해 있던 LD선 쪽에서 다시 총탄이 날아왔다. 우린 땅에 납작 엎드렸다. 조재진 일병이 “니기미 ○ 같은 새끼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 총을 쏘노” 하며 보이지도 않는 적을 향해 마구 총을 난사하자 “그만둬! 실탄을 아껴야지!” 하고 내가 말렸다. “씨팔놈들!” 하고 무지막지한 욕을 계속해 댄다.

    우리 중대는 휴식을 끝내고 제2목표를 공격하기 위해 마을을 벗어나자 또다시 수렁논이 앞을 가로막는다. 뜨거운 태양은 온몸을 땀으로 젖게 만들고 갈증은 참기 힘들 정도로 목을 태운다. 갈증이 너무 심해 대원들이 논에 고인 물로 목을 축이자 소대장이 “참아라, 참아!” 타이른다.

    논둑과 가시덤불을 엄폐물로 이용하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이 계속되는 사이 무장헬기들이 다시 나타나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면서 공격지점에 엄호사격을 해준다. 적들도 발악을 하는지 헬기를 향해서 마구 대공사격을 해댄다. 우리 중대가 제2목표를 점령하면 오늘 밤은 그곳에서 야영할 예정이다. 이글대는 저 태양,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이 오늘따라 너무나 원망스럽다.

    저 숙영지를 점령하면 제일 먼저 야자 열매를 따야지. 숙영지를 향해 우린 전진을 계속한다.

    “이재후 힘내! 조금만 참아!”

    더위에 허덕이는 그를 다독인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다 죽어! 빨리 움직여! 거의 다 왔어” 그의 장비 일부를 떠맡는다. 뒤처지는 그를 이웅이가 부축한다. 있는 힘을 다해 전진 또 전진. 드디어 제2목표 지점에 무사히 진출했다.

    1966년 3월 24일 목요일 맑음

    맹호 5호 작전 첫 밤을 초긴장 속에 무사히 적진 한가운데서 보냈다.

    자는 둥 마는 둥 그야말로 눈만 감았다 뜬 지난밤, 우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새로운 지점에 공격을 시작했다. 사방에서 터지는 포탄, 볶아대는 총격 소리로 귀가 먹먹해진다.

    어느 총소리가 아군이 쏘는 소린지, 적이 쏘는 소린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이 잠시 계속된다. 대숲에 엄폐한 우리 분대는 적의 사격을 계속 받아 총탄에 찢긴 대나무 가지들이 철모 위로 마구 떨어진다.

    아군의 화력이 집중되자 그들은 퇴각을 하려는지 사격이 잠잠해졌다. 우리 중대가 얼마쯤 전진했을 때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화염에 휩싸여 있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비무장 주민과 부녀자, 어린아이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저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무슨 일을 했다고 이 전쟁에 고통을 저렇게 맛봐야 한단 말인가.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들 모두가 적과 같이 생활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적의 구성원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순간적으로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비무장 민간인들에 피해가 나지 않게 각별히 조심을 하라!” 소대장님의 엄명이다. 그들을 뒤로하고 전진은 계속된다.

    비행기 폭격으로 거대한 분화구 모양의 웅덩이가 여기저기 하마가 입 벌리듯 검게 패 있다.

    무지막지한 더위에 중대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명령을 기다린다. 전쟁 공포는 사라지고 이글거리는 태양과 땀 그리고 갈증이 병사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더해준 어제와 오늘이었다.

    잠시 쉬며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우리 쪽으로 실탄이 아주 낮게 날아온다. 우리 소대보다 오른쪽 방향에서 한 발 앞서 간 제2소대가 수 미상의 적과 접전을 벌였다. 수많은 기관총탄과 소총탄이 공기를 가르며 빗발치듯 계속해 낮게 스쳐간다. “엎드려! 엎드려! 낮게 엎드려~!” 누군가 소리친다. 부상자가 났는지 2소대 공격 방향에서 녹색 연막탄이 피어오른다.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며 적 방향을 응시하는데 한 명이 아니고 여러 소대원이 당한 모양이다.

    근처에 있던 소대장이 “2소대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57mm분대 지원사격 하라!”

    사수와 나는 야자나무에 기대어 사격 위치를 잡고 57mm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시작했다. 꽝! 발사 폭음이 나는 즉시 폐쇄기를 열고 탄피를 제거한 후 재빨리 새로운 탄을 장전한다. 꽝!

    중대화력이 그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전 중대 돌격 앞으로!” 중대장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중대병력이 일제히 개인화기를 난사하며 적진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발목까지 빠지는 논을 지나자 적 방향에서 볶아대는 적의 응사도 만만치 않게 날아왔다. 전 중대병력이 좌우에서 일제히 공격해 들어갔다. 적의 화력이 분산된 틈을 타 대단한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돌격해 들어가 적의 저지선 돌파에 성공, 중대병력이 진격하는 데 결정적 활로를 개척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중대는 제2소대장님을 잃었고 분대장과 대원 한 명이 부상당하는 귀중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참으로 애석하고 분한 마음이다. 우리의 집중공격을 받은 적 저지선에는 견고한 개인호와 교통호가 구축되어 있었고 벙커도 있었다.

    진지 주위에는 적의 시체들이 처참하게 널려 있었다. 저지선을 돌파한 우리는 그곳을 지나 작은 강을 도하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전진해 갔다. 적은 우리의 공격에 다른 지역으로 퇴각했는데 이따금 멀리서 총격을 가할 뿐이었다.

    우리가 치솟는 초연을 뚫고 다시 마을 선단에 진출해 숨 가쁜 호흡을 잠시 풀면서 전방을 응시하는 순간 갑자기 우리 근처에 포탄이 날아와 터졌다. 우리는 재빠르게 적이 파놓은 엄폐호에 몸을 숨겼다. 뒤이어 연막탄이 날아와 바로 앞에서 터지며 흰 연기를 내뿜는다.

    
	“강재구 소령 수류탄 덮치는 모습 바로 곁에서 봐” 베트남 참전용사의 빛바랜 陣中日記
    즉시 무전교신이 계속되고 그 사이 몇 발인가 계속 날아와 터지더니 잠잠해진다. 아군의 포대에서 우리 진출 지역에 착오로 포격을 개시했다가 무전연락으로 즉시 중지한 것이다.

    “야~! 하마터면 아군포에 맞아 죽을 뻔했다! 씨팔놈들 같으니.”

    이웅이 입에서 거친 욕이 마구 튀어나온다. 우리는 산개하여 휴식을 취하며 얼마 후면 공격해 나가야 하는 저기 저쪽, 물이 잔득 고인 들판을 응시하며 장비와 탄약, 물과 식량보급을 기다렸다. 저기를 공격하는 데는 좀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군데군데 엄폐물이 있으니…. 그래도 희생은 따르겠지? 저기를 점령하면 우리는 그곳에서 또 야영을 하게 된다. 뜨거운 태양은 여전히 이글거리며 열풍을 내뿜는다. 전투의 무서움보다는 더위와 갈증이 병사들을 더 괴롭힌다.

    전쟁이여! 전쟁이여! 어서 끝나다오. 그리고 멀리 사라져라! 영원히 사라져라!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외쳐대고 있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동서통합연대
    글쓴이 : 별이빛나는밤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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